동유럽 여행 중 체코 서부의 카를로비 바리에 들렀다. 버스가 숲길을 돌고 돌아 깊은 숲속에 자리 잡은 아늑하고 아담한 도시에 도착했다. 카를로비 바리(Karlovy Vary, 독일어 는 Karlsbad)는 ‘카를 왕의 목욕탕’이라는 뜻을 지닌 온천 마을이다. 14세기 중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4세가 보헤미아의 숲에서 사냥하던 중 부상당한 사슴이 뜨거운 물에 들어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온천의 효능이 알려졌다고 한다.
18세기에 이 도시는 저명인사와 예술가가 찾는 휴양지로 발전했다. 특히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출발지로 기억된다. 1786년 9월 3일 새벽 괴테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 해 모인 친구들을 뒤로하고 여행 가방과 오소리 가죽 배낭만 꾸린 채 역마차에 몸을 싣고 알프스를 넘는다. 이후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면서 눈과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호흡한다.
카를로비 바리의 온천수는 몸을 담그는 것뿐만 아니라 마시는 치료법으로도 유명하다. 사람들은 거리를 산책하면서 곳곳에 설치 되어 있는 수도꼭지에서 온천수를 받아 마신다. 가게에서는 납작한 주전자를 닮은 온천수 음용 컵을 판매한다. 웅장한 열주 회랑에 온도가 다른 온천수가 여러 군데 흐르고 있기에 컵에 받아 마셔보니 맛이 다 다르다. 유서깊은 온천장의 신통한 물이 내 심신을 치유해주기를 바라며 뜨거운 온천수를 천천히 음미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쾨텐에 사는 동안 카를로비 바리를 두 번 다녀갔다. 20대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영주 레오폴트 대공은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이곳을 찾아 휴양했는 데 그때마다 한 달 이상 머물렀다. 대공은 온천 여행에 궁정 악단의 카펠마이스터 바흐와 음악가들을 데려왔다. 바흐와 악단은 대공의 손님들을 위해 공연해야 했다. 레오폴트는 특히 그의 자랑인 바흐가 건반악기 대가로서 기량을 발휘해주기를 바랐다. 귀족들은 몸에 좋은 온천수를 마시며 바흐의 연주를 들었다. 그들은 낮에는 사냥을 하고, 저녁에는 긴 만찬을 즐기고 나서 여러 나라에서 온 연주 단체가 공연하는 걸 보고 들었다.
바흐의 두 번째 여행은 1720년 5월 말부터 7월 초에 걸쳐 이루어졌다. 긴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문지방을 넘은 바흐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했다.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장례까지 끝나 있었다. 다섯 살부터 열한 살까지, 어린 네 자식은 목 놓아 울며 아버지를 둘러쌌다. 바르바라와의 사별은 바흐의 삶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3년을 같이 산 육촌 누이는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건강한 얼굴로 배웅해준 아내였는데,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바흐는 쾨텐 시절 모두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BWV 1014~1019를 작곡했는데, 주목할 것은 6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느린 악장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왜 바흐는 구슬프게 시작하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이 시기에 여럿 작곡했을까? 바흐 연구의 권위자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 곡들이 아내 바르바라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추측했다. 시기적으로 밀접하고 바흐의 음악으로는 이례적으로 통렬한 슬픔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번과 5번의 1악장은 듣는 사람을 눈물짓게 한다. 어두운 방구석에서 소리 죽여 곡하는 중년 사내가 떠오른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아이들의 눈을 피해 홀로 흐느끼는 처참한 모습.
1번을 처음 들은 곳은 단골 레코드 가게였다. 슬픈 운명을 예감한 듯 무거운 쳄발로 반주가 먼저 흘러나왔다. 이어 흔들리는 촛불 같은 현絃이 가세했다. 촛불은 곧 일렁이기 시 작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불꽃은 흐느끼고 호소하다 몸부림쳤다. 기진했다가 다시 하소연했다. 레코드를 고르던 나는 귀를 기울이다 곧 얼어붙은 듯 움직임을 멈췄다. 처음 듣 는 음악이었지만 마음을 다해 지은 곡과 그에 공감한 명연주는 듣는 이를 사로잡았다.
카를로비 바리는 겨울을 맞고 있다.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강에서 뜨거운 증기가 무럭 무럭 솟아오른다. 3백3년 전 바흐는 이 도시에 출장 와 대공의 악기로서 임무를 다했다. 유럽 최고였다는 건반악기 연주 솜씨를 연일 귀족들에게 뽐내며 주인의 체면을 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한가한 시간이면 그도 도자기잔에 온천수를 받아 마셨을 것이다. 쾨텐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줄도 모른 채.
writer Choi Jeongdong 기행 작가·칼럼니스트
intern editor Kang Ju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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