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식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한 역사소설.
고려거란전쟁 - 상
길승수 / 들녘
흔히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말한다. 숱한 외침과 전란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는 더더욱 금과옥조金科玉條와도 같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사료에 근거해 찬찬히 배우는 방법도 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역사소설이 출간되면서 우리 선조들이 걸어온 길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도 한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낸 역사소설을 통해 우리의 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살아내며,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어제와 마주해야 내일로 나아갈 수 있듯이.
잊힌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고려거란전쟁〉(전 2권)
길승수 작가의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 들>은 1010년 거란의 2차 침공을 다룬 정통역사소설이다. 거란은 모두 세 차례 고려를 침공했다. 여러 명분을 댔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반도 지배를 공고히 하며 북진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고려가 그 자체로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이에 993년 소손녕의 80만 대군이 침략했으나, 서희의 담판으로 강동 6주까지 확보하며 전쟁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고 목종을 폐위한 후 현종을 세우자 이를 구실로 거란은 다시금 침공했는데, 1010년의 일이다. <고려거란전쟁>은 거란의 2차 침공 전후 고려의 내정과 거란과의 관계 등을 역사적 사료에 근거해 꼼꼼하고 세밀하게 복원한다.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의 영웅들’이라는 부제답게 당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수와 병사들의 활약상을 실감 나게 재현한다. 거란의 2차 침공 시 꼭 기억해야 할 영웅은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다. 양규는 흥화진에서 2천여 명의 군사로 거란의 40만 대군을 일주일 넘게 막아냈다. 작가는 그 치열한 공방을 생생한 필력으로 담아내 읽는 이로 하여금 당시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한다.
양규 등의 활약에도 거란과의 전쟁은 끝을 맺지 못했고, 그를 비롯한 많은 이가 전쟁 막바지에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은 거란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현종은 양규의 아내 홍씨에게 내린 교서에서 다음과 같이 양규의 공적을 치하했다. “북쪽 국경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용맹을 떨치면서 군사들을 지휘하니, 그 위세는 돌과 화살을 압도했다. 적을 추격해 생포하고 그 힘으로 국토를 안정시켰다. 한번 칼을 뽑으면 만 명의 적군이 다투어 달아나고, 강궁을 당기면 모든 적이 항복했다.”
양규 외에도 김숙흥, 강감찬, 강민첨 등 전란 극복에 힘을 모은 영웅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작가는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에 이어 거란의 3차 침입을 담은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고려사>, <요사>, <송사> 등 사료를 충실하게 연구하며 고증에 만전을 기했다. 그런 점에서
<고려거란전쟁>은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의 주요 장면을 충실하게 복원했다고 할 수 있다.
범도 1
방현석 / 문학동네
일제강점기 소년 포수의 성장기, 〈범도〉(전 2권)
방현석 작가의 <범도>는 소년 포수에서 대한독립군을 이끌며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선 홍범도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평범한 삶마저 쉽지 않은 세계에서 이웃과 함께 울고 웃으며 자신의 신념을 견지했던 인간 홍범도의 성장기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군대 해산 후 유일하게 총을 소지할 수 있었던 포수들이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만주와 연해주 등을 떠돌며 독립의 초석을 다진 이야기가 장대하다. “나는 홍범도를 통해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새롭게 출현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지를 알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홍범도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을 통해 역사와 멀어진 오늘날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사랑과 혁명 1
김탁환 / 해냄
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랑과 혁명〉(전 3권)
소외되고 억압받은 인물에 주목하며 품격 있는 역사소설의 장 르를 개척한 김탁환 작가. <사랑과 혁명>은 19세기 초 다른 세상을 꿈꾸며 천주교를 믿었던 사람들의 시련과 그에 맞선 믿음의 고결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827년 전남 곡성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옥사인 ‘정해박해’를 중심으로, 천주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민초의 고된 삶과 천주교인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권력자의 탐욕을 그려낸다. 소작농, 포수 등 소외된 사람들이 신을 섬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당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성이 압권이다. 박해의 중심지 곡성에 거주하며 19세기 당대 사료를 꼼꼼히 훑어 절박한 백성의 삶을 재현한 작가의 공력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하얼빈
김훈 / 문학동네
의사 안중근의 실존적 고뇌, 〈하얼빈〉
김훈 작가의 <하얼빈>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사 안중근 의 실존적 고뇌를 그려낸 작품이다. 난세를 헤쳐가야 하는 운명을 마주한 인간, 그 내면에 집중한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제국주의라는 악을 단호히 배격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안중근의 행적을 재현한다. 쇠락한 조국에 느끼는 비애와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 다만 천주교인으로서 살인하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한 철저한 고뇌는 물론 아내와 자식을 둔 생활인으로서의 번민을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아울러 동양의 평화를 위해 스스로 짊어진 삶의 무게를 거부하지 않았던 안중근 의사가 보낸 며칠의 삶을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칼의 노래>에 뒤지지 않는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writerJang Dongsuk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출판평론가
intern editorKang Juhee
photographerRyu Hose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