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불어서
하늘하늘 아지랑이의 춤 속에서 우리는 바람의 힘이 온 생명을 기뻐 날뛰게 하는 걸 본다. 봄은 마음을 들썩이고, 영혼을 움직이게 하며, 귀신마저 춤추게 한다. 우리 역시 억눌린 삶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
봄을 맞은 시인의 마음
봄은 바람의 계절이다. 만물이 약동하는 봄은 무엇보다 피부에 와닿는 공기의 역동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바람은 얼어붙은 산과 들을 녹이고, 굳은 강물을 풀어주며, 잠들었던 꽃들을 일으킨다. 봄이 되면 나무들은 한 가닥 움을 내밀어 공기 변화부터 감지한다. 남쪽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서 온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은 걸 알고서야 비로소 푸르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봄을 맞은 시인의 마음이 바람의 운동에 끌리는 건 당연하다. ‘봄바람이 불어서’에서 문태준 시인은 말한다. “봄바람이 불어서/ 잔물결이 웃고// 봄바람이 불어서/ 굴에서 뱀 나오고// 봄바람이 불어서/ 밑돌이 헐겁고.” 이 시에서 바람은 물을 해방하고, 땅을 움직이며, 온 생명을 죽음의 굴에서 기어 나오게 한다. 뱀은 부활의 은유다. 해마다 탈피하는 뱀은 고통을 견디고 죽음의 유혹을 넘어 우리가 거듭날 수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러니 아무리 세상이 힘들어도 그 괴로움에 짓눌려 패배하고 절망하는 건 어리석다. 지혜로운 자들은 고통을 시련의 이름으로 견딘다. 그러다 때가 되어 바람이 불어오면 그들은 죽 음의 굴에서 기어 나와 기어이 다시 봄을 맞는다. 시인은 이어서 노래한다. “봄바람이 불어서/ 귀신이 흐늘거리고// 봄바람이 불어서/ 저쪽으로 가는 물 빛/ 세계의 푸른 두 눈.” 바람은 물을 해방한다. 아지랑이란 물이 바람의 날개를 달고 중력에서 풀려나 하늘로 오르는 현상이다. 시인은 이를 ‘저쪽으로’란 부사 하나로 압축한다.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다. 세속의 삶이 아니라 열반의 피안이다. 하늘하늘 아지랑이의 춤 속에서 우리는 바람의 힘이 온 생명을 기뻐 날뛰게 하는 걸 본다. 봄은 마음을 들썩이고, 영혼을 움직이게 하며, 귀신마저 춤추게 한다. 우리 역시 억눌린 삶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 갈수록 푸르러지는 나무와 풀처럼 우리도 생명의 푸른 두 눈을 얻을 수 있다. 그 눈은 우리에게 헤어진 자들은 만나고, 넘어진 자들은 일어서며, 우울의 겨울을 견딘 자들은 기쁨의 봄을 맞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람은 세계의 숨결
이 때문에 옛사람들이 바람에서 만물을 다스리는 원리를 발견했다. 약 2천6백 년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메네스는 말했다. “영혼이 우리를 결속하는 것처럼 공기는 세계 전체를 감싸고 있다.” 공기를 그리스어로 ‘프네우마pneuma’라고 한다. ‘숨결’이란 뜻이다. 우리 정신에 바람은 풍속을 재고, 기압을 측정할 수 있는 물리현상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바람은 우리에게 세계 전체를 감싸고 있는 생명의 움직임 자체로 현현한다. 호흡을 통해 우리는 세계의 숨결, 그 생명의 원천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인다. 호흡을 그치면 삶도 끝난다. 살아간다는 것은 바람의 힘을 빨아들여 그 생기를 몸 안의 여러 생체 기관에 공급하는 일이요, 더 나아가 부지런히 영혼을 기르는 일이다. 바람의 힘을 빼앗기면, 신체는 죽어가고 영혼은 타락한다. 히브리 사람들이 프네우마를 성령이라고 부른 것은 자연스럽다. 신이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들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창세기〉 2장 7절) 인간은 신의 숨결을 받아들 여 생명을 이어간다. 신의 숨결이 끊긴 인간은 붉은 진흙에 지나지 않는다. 성스러움을 잃어버린 인간은 움직이는 기계나 다름없다. 따라서 인간은 성스러 운 영혼, 즉 신의 숨결을 빨아들여 거룩함을 이룩해야 한다. 거룩함이 없는 삶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 흐느적대는 좀비의 삶이나 마찬가지다.
바람의 언어를 읽으라
물리적 삶이 아니라 영혼의 삶을 살 때 인간은 제대로 살아간다. 히브리 사람들은 신의 숨결이 바람의 형태로 온 세상에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사람들이 앉아 있던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사도행전〉 2장 2절) 자기 안에 바람의 힘을 받아들여 영혼에 생기를 얻은 이들을 사도라고 한다. 이들은 삶의 비밀을 깨닫고, 바람의 언어를 온 세상에 전한다. 신은 우리 곁에, 온 세상 모든 곳에 있다. 바람이 불때마다 신을 떠올리고, 호흡할 때마다 신을 생각하라. 진리 안에서, 진리를 알처럼 품고 사는 삶만이 올바르다. 바울은 말한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로마서〉 8장 6절)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일은 세상을 물리학으로만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삶의 결과는 바람의 힘을 잃는 것, 곧 죽음이다. 인간은 바람의 힘을 좇아서 살아야 한다. 신의 호흡, 즉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면서 살 때 인생은 생명과 평화가 넘치게 된다. 만물을 잠에서 깨우고 죽음에서 일으키는 봄바람은 이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선연히 깨닫게 한다. 보라, 바람이 닿는 곳마다 잎은 푸르러지고 꽃은 피어난다. 묵은 나무가 바람을 받아들여 생기를 되찾듯, 신의 바람은 우리 안에 영혼을 생성한다. 그리스어로 영혼을 프시케psyche라고 한다. 이 말은 프시코psycho에서 왔다. ‘숨 쉬다’란 뜻이다. 우리 영혼은 신이 불어넣은 생기, 존재의 근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틴어 스피리투스(spiritus, 정신) 또는 아니마(anima, 영혼) 역시 바람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에 따르면, 영감(inspiration)이란 들숨, 즉 신의 숨결(spirit)을 내 안으로(in-) 빨아들이는 일이다. 들숨이 없는 삶, 그러니까 존재의 뿌리를 생각하지 않는 마음은 정신도, 영혼도 없는 삶과 같다. 세상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할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는 태어난다. 피부에 바람이 닿고, 허파가 공기를 빨아들일 때마다 우리는 이 엄연한 사실을 환기해야 마땅하다. 사람들 마음에 바람이 들면, 에로스eros의 힘이 함께 깨어난다. 에로스는 생성의 힘, 어떤 것이라도 만들어내려고 하는 작용이다. 봄바람이 든 마음은 저절로 사랑을 갈구하고, 바람이 깃든 영혼은 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바람에 휩싸인 정신은 기꺼이 유행에 올라탄다. 바람이 불면 무엇이든 변화가 일어난다. 바람은 우리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 중력의 제약, 현실의 억압에서 풀려나게 하는 까닭이다.
바람은 우리를 춤추게 한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바람의 힘이 우리를 날아오르게 한다고 말한다. 새가 바람을 타고 날 듯 신의 숨결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종달새는 가볍고도 보이지 않는다. 그 새는 즉각적 승리로 성취되는 대지로부터의 일탈이다. 그는 대뜸 자유인 것이다.” 바람은 도약의 힘을 내재한다. 죽음에 감겨 있고 고통에 시달리던 온 존재를 ‘대뜸 자유’롭게 한다. 대지를 딛고 일어서고 박차고 오르게 충동한다. 바람의 힘은 우리를 춤추게 한다. 땅에 빌붙어 걷고 기지 않고 중력의 정령에 저항해 위로 떠오르려 내딛고 도약하고 회전하는 댄서로 만든다. 공기의 꿈을 꿀 때, 우리는 한순간 ‘저쪽으로’ 옮겨간다. 속된 존재에서 성스러운 존재로 변신한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진정으로 노래한다는 것, 아, 그것은 또 다른 숨결이니/ 무無의 주위로 형성되는 호흡, 신의 품으로의 비상. 한 줄기 바람.”숨결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무와 같다. 노래는 지루한 일상, 반복되는 생활, 죽음처럼 고요히 침묵하는 세계에서 살랑살랑하는 한 줄기 바람을 내 안으로 데려올 때 생겨난다. 아무 말은 시가 아니다. 신의 숨결을 닮은 호흡만이 진짜 노래가 된다.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 김광석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바람은 무를 깨뜨리고 우리를 신의 품으로 날아오르게 한다. 바슐라르는 이를 승화(sublimation)라고 한다. 이 말은 라틴어 수블리마레sublimare에서 왔다. ‘들어 올리다’라는 뜻이다. 존재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리는 일, 고체에서 기체로 변화시키는 일을 말한다. 바람의 힘을 받아들인 영혼은 사물이든 인간이든, 한순간 생기를 얻으면서 비약해 숭고함을 얻는다. 봄에 유난히 온 세상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일 테다. 바람은 진부한 현실을 무너뜨리고, 상투적인 삶을 깨뜨리며, 온 세상에 생명의 역동성을 분출시킨다. 봄은 우리에게 바람이 일으키는 이 생성의 눈부신 춤에 동참하라고 속삭인다. 바람을 탈 때, 인간은 완전해진다. 사랑의 힘을 깨닫고, 연인을 향해 언어를 날아오르게 하는 시인이 되고, 타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정성을 쏟는 성자가 된다. 신의 숨결을 호흡하라. 그러면 생명을 그 대가로 얻을 것이다.
writerJang Eunsu 출판 편집인·문학평론가
editorJo Sohee
intern editorKang Ju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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