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
살아야 할 이유
어디선가 ‘봄’이 들려오면 하일리겐슈타트의 베토벤을 떠올린다. 가슴 가득 음악을 채운 예술가가 삶의 희망을 연주하는 장면과 함께.
1802년 4월 베토벤은 빈Wien 북서쪽 교외에 있는 온천 마을 하일리겐슈타트로 거처를 옮겼다. 청운의 뜻을 품고 빈에 입성한 지 10년째인 음악가는 한창 나이인 서른한 살이었다. 그런 시기에 도시를 떠나 한적한 마을로 간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베토벤은 서서히 귀를 먹어가고 있었다. 난청이 심해지자 주치의는 시끌벅적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휴양하기를 권했다. 음악가에게 난청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베토벤은 지난 몇 년 동안 귓병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아몬드 기름을 섭취하고, 귀에 물약을 투입하고, 심지어 미지근한 강물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귀가 윙윙거리는 이명 증상만 심해질 뿐이었다.
하일리겐슈타트는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몇 달을 지내도 난청 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함께 산책하던 제자는 멀리서 들려오는 목동의 피리 소리를 듣고 “선생님, 저 소리 좀 들어보세요!” 했지만, 베토벤은 아무리 애를 써도 피리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절망에 사로잡힌 그는 우울감과 싸우며 여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10월이 되자 베토벤은 종이를 펼치고 두 동생인 카를과 요한 앞으로 편지를 썼다. 후대 사람들이 <하일 리겐슈타트의 유서>라 부르는 글이다. ‘유서’답게 글에는 삶을 마감하는 사람의 당부가 포함되어 있다. “내 적은 재산에 대한 상속자로 너희 둘을 임명하니, 서로 공평하게 나눠 갖고 화합하기”를 당부한다. 또 “악기는 보관해주면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팔아도 좋다”고 이른다. 그러고는 “이제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작별을 고한다.
하지만 글을 정독해보면 보통의 유서와 달리 아직은 죽을 수 없는 이유를 말하며 삶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것을 알 수 있다.“ 목동의 피리 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때 굴욕을 견디기 힘들었고 절망에 빠져 거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지경까지 갔다. 하지만 예술은 삶을 유지할 이유였고, 내가 창작하고자 했던 것을 모두 이루기 전에 죽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는 “나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도 죽음이 너무 이르게 느껴져서 좀 더 지체되기를 바란다”며 삶의 희망을 드러낸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가 유서가 아닌 이유다. 베토벤은 이 편지를 쓴 뒤 두 동생에게 보내지 않고 비밀 서랍에 보관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죽을 작정으로 유서를 쓰던 베토벤은 글을 쓰는 동안 기분이 나아진 듯하다. 그래서 쓰는 동안 죽을 이유보다 오히려 살아야 할 이유를 강하게 인식한 것 같다. 하일리겐슈타트 시기 전후로 그가 써낸 작품들을 봐도 그의 정신세계가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02년 10월 중순 하일리겐슈타트를 떠난 베토벤은 이듬해 5월부터 새 교향곡 작곡에 착수해 다음 해에 완성했다. 바로 3번 교향곡 ‘에로이카’다. ‘에로이카’는 1, 2번 교향곡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장대한 작품이다. 음악적 완성도 또한 빈틈이 없으며, 작곡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창작기, 즉 중기中期로 진입했다. 죽음을 생각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었을까. 하일리겐슈타트에 머물던 때 이미 그의 가슴속에는 ‘영웅’ 교향곡 첫머리의 두 차례 강타가 울리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하일리겐슈타트 직전의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은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이다. 베토벤은 요양을 떠나기 전 해인 1801년에 이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다. ‘봄’이라는 제목은 작곡가가 직접 붙인 게 아니라 나중에 곡을 들은 사람이 지어주었는데 분위기를 잘 드러낸 작명이다. ‘봄’은 밝고 부드럽고 따뜻한 음악이다. 1악장의 상쾌하게 도약하는 첫 주제는 듣는 이를 설레게 한다. 음악이 흐르는 공간이 갑자기 꽃이 만발한 듯 환해진다. 느린 2악장은 ‘아다지오의 마술사’ 베토벤이 펼치는 감성적인 선율이다. 느리지만 어둡지 않고 듣는 이를 행복한 기분에 젖게 한다. 죽음의 어두운 계곡을 헤매는 사람이 쓰기는 힘든 음악이다. ‘에로이카’의 힘찬 악상도 그렇지만 ‘봄’의 포근한 선율을 듣고 있자면 이런 음악으로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예술가가 죽기보단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천행으로 여겨진다.
봄이다. 어디선가 ‘봄’이 들려오면 하일리겐슈타트에서의 베토벤을 떠올리고 그의 외로운 어깨를 한번 안아주자.
WRITER CHOI JEONGDONG 기행 작가·칼럼니스트
INTERN EDITOR KANG JU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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