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첩되는 물성, 쌓여가는 시간
지난 수십 년 동안 조각의 본질에 대해 치열하게 탐색한 박석원. 그의 영토 위에는 ‘앵포르멜 조각’, ‘실존주의 추상 조각’, ‘실험적 설치 작업’, ‘미니멀리즘 조각’, ‘자연적·전통적 물성에 대한 탐구’와 같은 독보적 예술 정신이 켜켜이 구축되어 있다.
Installation view of Park Suk Won solo exhibition, The Page Gallery, Seoul, 2024 ⒸPark Suk Won
Photo by Joel Moritz / Image Courtesy of The Page Gallery
한국 추상 조각의 대가 박석원(b. 1942~). 그는 ‘적(積, 쌓을 적)’이라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론으로 조각의 재료가 지닌 본연의 물성과 구조를 탐색하고, 이를 토대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 속에 내재된 존재의 심연을 조망하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1960년대, 그는 죽음과 폐허, 체제의 붕괴를 경험하며, 고립된 개인의 내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실존’에 새겨진 전후의 불안과 고통은 단단한 철을 토치의 불꽃으로 녹인 형상과 닮아 있었으며, 녹아내린 철의 거친 표면은 이성과 욕망이 얽혀 있던 젊은 예술가의 요동치는 내면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날카롭게 솟아 오른 고철 쪼가리, ‘초토焦土’(1967)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마주한 작가의 상처와 가난을 힘겹게 통과하며 그렇게 우리 앞에 등장했고, 1968년 국전에서 국회의장 상을 수상하며 박석원은 ‘한국 현대 조각의 이정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앵포르멜과 실존주의, 그리고 추상 조각
‘초토焦土’는 불에 그을린[焦] 땅[土]이자, 황폐화된 세상을 의미한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맥락에서 박석원 작가의 미술사적 위치가 매우 견고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후 60년 이상 지속된 조각가의 여정이 초토화된 허무의 땅 위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작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조각의 본질에 대해 치열하게 탐색했고, 그 결과 폐허만 남아 있던 젊은 예술가의 영토 위에는 ‘앵포르멜 조각’, ‘실존주의 추상 조각’, ‘실험적 설치 작업’, ‘미니멀리즘 조각’, ‘자연적·전통적 물성에 대한 탐구’ 등 독보적 예술 정신이 켜켜이 구축되어 있다.
이처럼 이제는 한국 현대 조각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박석원의 조각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은 ‘앵포르멜적 조형’이다. 앵포르멜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 유럽의 회화 운동에서 유래했다. ‘비정형 추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경향은 이성과 냉정함을 강조했던 이전까지의 기하학적 추상주의에 반발해 예술가의 표현적 충동과 즉흥적인 행위, 서정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 발표된 박석원 작품은 주로 철을 거칠게 이어붙이거나 알루미늄을 주조한 우연한 형태의 조각들로,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혼란 속에서 작가가 체감한 비극과 상처를 즉흥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대변했다. 때문에 작가의 초기 작품들은 앵포르멜적 조형의 특색을 갖춘 한국적 앵포르멜 작품으로 이해된다.
또한 이 시기 앵포르멜과 거의 동시에 거론되는 특징은 ‘실존주의 추상’이다. 실존주의는 제1·2차 세계대전 후 인류의 진보라는 낙관론이 무용화되면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유럽의 문예사조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주목하는 이 사조는 특히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된 사회일수록 고립된 개인의 내면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즉 실재하는 인간의 존재, ‘실존實存’ 문제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했다. 195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서구의 실존주의는 전쟁의 비참함을 체험한 1960년대 한국 예술계에 상당한 울림을 주었고, 폐허 가운데 놓인 인간의 심정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동시대 박석원의 조각 역시 전후 실존주의의 향기를 체득한 작품으로 간주된다.
Park Suk Won, Accumulation 2028, 2005~2020, string, 60×60×300cm
‘적積’, 절단과 결합과 반복
‘쌓기’ 행위의 기본 구조는 ‘절단’과 ‘결합’, ‘반복’ 세 단계다. 그리고 이 세 요소는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박석원의 조각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작업 방식이자 예술적 화두다. ‘쌓다’, ‘축적하다’의 의미를 한자어로 압축해 표현한 ‘적積’ 시리즈 역시 철저히 이 법칙을 따르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돌이나 나무, 철판을 기하학적 형태로 절단하고 이를 다시 이어붙이거나 올려놓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러한 작품 형식은 1970년대 초반부터 각종 단체전과 국전을 통해 조금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다가, 1980년대 들어서 완전한 형식과 내용을 마련하면서 초기 작품군과는 전혀 새로운 지향점을 갖게 된다. 작가가 이렇듯 과감한 전회를 시도한 데 대해서는 여러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겠지만, 아마도 197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에 불어온 ‘탈표현주의’ 경향이 큰 계기를 마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구로부터 근대적 조각 형식이 도입된 이후 한국의 작가들은 줄곧 특정한 대상의 모습을 조형화하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그러나 평론가 이일이 언급했듯이,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조각가들은 ‘만든다’는 행위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재료를 활용해 특정한 형태를 창조해내는 행위 속에서 예술과 자연을 대하는 창작자의 인간 중심주의적 태도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반성적 태도로서 작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축소하고, 재료를 가공하지 않고, 자연 본연의 물성을 강조하는 ‘탈인간중심주의’, ‘탈표현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박석원의 작품 역시 재현적 요소를 차단해 재료 본연의 물성과 구조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당대 미술계의 흐름과 일정 부분 맥을 함께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석원 작품만이 지닌 매우 독보적이고 탁월한 점은, 그가 예술가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중심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힌트는 ‘관계’에 있다. 박석원은 ‘조각은 자연과 인간 관계의 미학’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을 만큼 관계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온 작가다. 그에게 관계란, 조각을 매개로 인간과 자연이 새롭게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예술이 유일무이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자로서의 인간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자연(재료)의 특성을 축소시키고 변형했다면, 박석원은 절단과 축적이라는 단순한 도정으로 최소한의 역할만을 수행해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다. 재료 본연에 깃 들어 있던 무한한 의미를 조각이라는 물성을 통해 현시하고, 그 의미가 인간의 시각과 만나는 시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성을 획득하게 하는 것. 박석원은 세계를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역할 대신 세계를 드러내는 조력자에 가까운 존재가 되기를 자처함으로써 비로소 탈인간중심주의적이고 탈표현적인 자신만의 추상 조각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적의積意, 쌓여가는 시간의 의미
조각 내부에 존재하는 근원적이고 비가시적인 원리에 주목하는 작가의 추상 조각들은 단순성, 반복성, 물성에의 환원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종종 ‘한국의 미니멀리즘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창작자의 의도가 최소한으로 개입된다는 점, 재료가 지닌 물성을 존중하는 작가의 태도 등은 서구 미니멀리즘과 구별되는 특성이다. 무엇보다 사물에서 불필요한 형태와 의미 요소를 거둬낸 간결한 형식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미니멀리즘이라면, 박석원은 오히려 간결한 형태에 드러난 물성 내면의 의미를 발굴해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자연과 사물의 본질을 둘러싼 작가의 총체이자 독특한 사유 방식은 ‘적積’에서 ‘적의積意’로 이동하면서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는다. ‘적의積意’는 쌓기[積]에 ‘뜻 의(意)’를 더한 것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시리즈의 제목이다. 단순히 쌓기라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외에도 작가가 지닌 조각가로서의 소명 의식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영문 제목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적積’의 명제가 ‘Mutation-Relation(변동되는 관계)’였다면, ‘적의積意’는 ‘Accumulation(축적)’으로,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쌓기에 방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작품을 쌓아서 제작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쌓기, 축적이라는 개념에 조금 더 천착하겠다는 작가의 의지도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최근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우리 삶의 모든 유형의 흐름을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쌓이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싶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먼지가 오래되면 하나의 지층을 형성하듯 모든 쌓임은 시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깨달음, 그리고 이 시간의 얽힘이야말로 우리 삶의 모든 장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예술가적 통찰에서 비롯된다.
‘적의積意’로의 이행 이후 ‘축적’에 더욱 본질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투영하기 시작한 작가는 최근 들어 한국의 석탑이 지닌 전통 조형의 특성을 축적의 기법과 연결 지어 한국적인 추상 조각의 방향을 모색하는 한편, 한지와 같은 전통 소재를 차용하는 등 작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근작 ‘적의 23170’(2023)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푸른 색채의 수제 한지를 기하학적 형태로 잘라 캔버스 위에 부착한 작업이다. 일종의 ‘물성 회화’인 이 작업에서 작가는 무수히 조각낸 한지를 어떤 의미도 없는 블록 형태의 구획 위에 반복적으로 덧붙이는 방식으로 한지의 물성과 직접적인 만남을 시도한다. 이 만남의 성공에는 역시 절단과 쌓임, 반복이 필수적인 요소다. 박석원은 조각가로서의 60년을 회고하면서 삶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철학대로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 꾸준히 ‘축적’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반복’은 가장 원초적인 삶의 리듬이 될 것이다. 쌓고 부수기를 반복하면서 세상을 마주할 단단한 내면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 그 과정에서 삶의 명쾌한 본질을 만날 수 있을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축적은 분명 더 넓은 곳으로 진행하는 좋은 디딤돌이자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ARTIST PROFILE박석원 PARK SUKWON, 1942~ |
writerShin Iyeon 독립 기획자
editorKim Minh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