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존재의 증명이 될 때
조회수 1억 뷰를 기록하는 강연가부터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와 알랭 드 보통까지, 돌아보면 늘 불안의 감정을 탐구하고 공감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이 자리한 불안을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피식 코웃음이 나는 황당한 만화로 유명한 미국 만화가 게리 라슨Gary Larson의 <파 사이드Far Side>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한 오케스트라의 심벌즈 주자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교향악 연주 중 단 한 번만 심벌즈를 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긴장하며 중얼거린다. “오늘은 절대 망치지 말아야지. 절대 망치지 말아야지… 절대….” 그런데 그림 밑에는 다음과 같은 캡션이 잇따른다. ‘라저는 망친다’. 놀랍게도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걱정할 수 있는 짐승이다. 우리는 기본적 생존 본능에 충실한 동시에, 진화를 거듭한 전두엽의 놀라운 예측 능력으로 온갖 불안에 시달린다. 그래서 페르시아 시인 루미Rumi는 ‘불안은 마음이 미래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미국 영화감독 아리 애스터Ari Aster는 최근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에서 이런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로 축조한다.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보는 아버지 기일을 맞아 캐나다에 있는 어머니 모나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으나, 끝내 집을 찾지 못하고 온갖 초현실적인 일을 경험한다. 비행기표를 끊어뒀지만 이웃의 방해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일단 너무 늦게 일어났다. (사실은 어머니 집에 가고 싶지 않다.) 황급히 짐을 챙겨서 나가려 하지만 물건을 깜박했다. 물건을 챙기는 사이 집 열쇠가 사라진다. 다시 집에 들어가서 약을 먹어야 하는데 수돗물은 모두 말라 있다. 물과 함께 마시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의사 이야기가 떠올라, 집 앞 마트로 쏜살같이 달려나간다. 길거리는 난장판이고, 살인마도 돌아다닌다. 길거리에 있던 부랑자들이 열쇠가 없어 문을 열어둔 보의 아파트에 들어가려 한다. 신용카드는 정지되었고, 동전을 찾아 허겁지겁하는 사이 부랑자들은 보의 집에 침입해 난장판을 만들어버린다.
영화는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펜 끝에서 탈출한 듯, 불투명하고 예 측 불가능한 혼란과 무질서의 난장판, 과거나 미래가 뒤섞인 아말감의 세상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감독은 카프카의 장편소설 <심판>이나 <성>에서 볼 수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권력의 상징으로 보의 어머니와 그녀의 양수로 상징되는 물을 섬세하게 이미지화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어머니 태내에서 어렵게 빛을 향해 태어나는 보의 시점 숏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머니는 의료진에게 ‘우리 아들을 어떻게 한 거냐?’며 히스테리를 부리고, 보는 이 혼돈스러운 세상에 막 내던져진 참이었다. 아마 프란츠 카프카라면 이 장면을 보고 “나의 본질은 불안이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잠언대로. 때론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증거이자 방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관적인 자기 인식의 안경을 벗지 못한 보와 달리, 불안을 인정하는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의 마음과 더 잘 연결될 수 있다.
불안은 태초부터 거울 속의 거울처럼, 미로 속의 미로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 고리를 타고 우리 마음을 기어오른다. 불안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오히려 그 시도가 또 다른 불안을 초래하는 아이러니 말이다. 그리고 인간관계가 이 불안의 바다에 기름을 붓는다. 알랭 드보통의 저서 <불안>은 우리가 겪는 불안감이 단순히 내면적 문제만이 아니라 깊은 사회적 뿌리를 지니고 있음을 탐구한다. 욕망의 시녀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관계의 시종이기도 한 불안의 원인을 타인의 인정과 사랑, 성공과 실패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추종하려는 마음, 사회적 지위변동에 대한 두려움, 타인과의 비교 등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제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2017)를 살펴보자. 영화는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자존감 저하, 불안 문제를 다룬다.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주인공 브래드는 대학 동창들의 SNS를 보며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를 느낀다. 그의 동창생 중엔 ‘화려하고 방탕하게’ 사는 할리우드 거물 감독 닉과 ‘황당할 정도’의 부를 거머쥔 헤지 펀드 대표 제이슨도 있고, 마흔에 정보 기술(IT) 기업을 팔아 두 명의 하와이 여인과 한량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는 친구 빌리도 있다. 특히 학창 시절 라이벌 크레이그는 백악관에서 일하고 베스트셀러 책도 여러 권 낸 유명인이 되었다. 브래드는 TV에 크레이그가 나올 때마다 “명치를 맞은 기분. 온 세상이 내 심기를 건드리는 기분”에 빠진다. “날 괴롭히는 유령을 본 듯했다. 순간의 질투가 아니었다. 진짜 고통이었다.” 과연 알랭 드보통이 간파한 대로, 47세의 브래드는 자신의 성취와 타인의 성공을 비교하며 느끼는 중년의 위기와 불안에 빠져 있다. 영화는 마침 사회적 관계와 가족 구조가 불안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 한다. 특히 브래드와 아들의 관계는 세대 간에 전달되는 불안을 끊어버리고, 어떻게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통해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브래드는 자신이 패배자로 여겨질까 두려워하지만, 사실 이 두려움은 브래드가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 브래드에게 아들은 말한다.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할 거야. 모두 자기의 일에만 신경 쓰니까. 아빠를 신경 쓰는 건 나뿐이야, 아빠.”
브래드의 변화는 불안을 통한 성장의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시작된다. 흔히 그렇듯이, 변화는 트라우마와도 같은 사건이나 존재를 직면하면서 일어난다. 하버드대학교 입학 인터뷰를 앞둔 아들 트로이가 면접에 하루 늦어버리는 바람에 마침(하필) 하버드에서 강의하던 크레이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 브래드는 크레이그의 바뀐 전화번호를 알아내고자 소식이 끊겼던 동창들과 연락하게 된다. TV나 매체로 접하던, 그리고 브래드의 열등감이 추동하던 ‘허상’에 가까운 그들의 실제 근황을 알게 된 것이다. 브래드의 상상 속에서 전용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닐 것 같던 친구 제이슨은 거래처 닦달에 시달리던 와중에 세 살 딸아이가 척수 사슬증 진단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렇게 아들의 면접을 계기로 브래드는 불안의 요인이었던 열등감과 마주할, 그리고 타파할 계기를 순차적으로 만난다. 면접 기회를 마련해준 크레이그와 식사 자리를 갖게 되지만, 이 만남에서 브래드는 속물적 세계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크레이그와의 식사 자리를 박차고 나온 그는 아들의 친구들이 연주하는 클래식 공연을 관람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나는 나 자신을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어. 이제 나는 내면의 삶을 느낄 거야.” 불안이란 감정은 때로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지만, 한편으로는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긍정적 교류와 경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순간들 속에서 감사라는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비로소 우리를 압박하던 인간관계가 사실은 행복을 찾아가는 황금 연못이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
또한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마음의 자세로 ‘자기 수용’을 꼽는다. 우리 모두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깨어지지 않음’이 아니라 ‘깨어져도 좋음’을 받아들일 때 오히려 불안의 파도는 잠잠해지고 더 큰 내적 평화가 손님처럼 찾아온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명백한 자기 감시에서 벗어나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기 감시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주변 환경과 타인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행동을 그에 맞춰 조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회적 상황에서의 성공적 적응을 돕지만, 동시에 자신의 진정한 감정이나 생각을 억제하고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경험하게 만든다.
영화 <킹스 스피치>(2010)는 이 원칙을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말더듬증으로 고통받는 버티(조지 6세)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 있게 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그러다 혁신적 언어 치료사 로그를 만난다. 로그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더듬는 사람은 없다”며 버티에게 음악 소리가 나오는 헤드셋을 끼고,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어볼 것을 제안한다. 버티는 자신이 계속 말을 더듬는다고 느끼고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치료를 포기하려 든다. 그러나 후에 로그가 준 테이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즉 자기 감시를 멈추자, 자신도 모르게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유창하게 읊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지속적 감시와 평가에서 벗어나 현재에 몰입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인생에서는 공을 노려보는 대신 공을 보지 말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목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내려놓고 3시간 앞의 순간만을 살아가보자. 지금 불안이 엄습한다면 다음을 기억하자. 지금의 불안은 더 깊은 몰입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손이 떨리는 순간은 이미 준비 과정에 들어섰다는 신호일 뿐이다. 돌이켜 보면 걱정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할 것은 두려운 생각 그 자체일 뿐이다. 게리 라슨의 만화 속 심벌즈를 치기 5초 전의 라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라저, 너가 걱정을 해도 연주는 계속될 거야. 내일은 더 나은 실수를 하자.” 이렇게 심벌즈 치는 시간을 기다리면 된다.
writerSimYoungsub 한국영상응용연구소 대표
editorKimMinhyung
©Alamy,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