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세상, 단순한 행복
외적으로 간소하나 내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이 우리를 구원한다.
부카의 시대
사회학자들은 우리 시대의 특징을 부카VUCA라는 말로 요약한다. 불안정하고(volatility), 불확실하고(uncertainty), 복잡하고(complexity), 모호하다(ambiguity)는 뜻이다. 현대 세계는 너무나 혼잡하고, 산만하다. 깊이 성찰하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런 세상에선 좋은 삶을 살기 어렵다. 질서 없는 삶은 우리를 지나친 스트레스 속으로 빠뜨리기 때문이다. 번잡하나 공허한 인간 관계, 넘쳐나나 무의미한 정보 소비 등이 그 원인이다. 오늘날 인간의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나온다.
대도시의 삶은 우리의 인간관계를 거의 무한대로 확장한다. 그런데 자기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사이가 지나치게 넘쳐나면 삶의 주인 됨이 무너지기 쉽다. 자주 보지도, 만나지도 않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인생에 끼어들어 일상의 리듬이 무너지고, 삶의 안정성이 깨지는 일이 잦아진다. 타인으로 인해 삶의 평화가 수시로 방해받으면서 바라는 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친구 관계는 평균 1백50명이 한계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한 사람의 친구 숫자가 평균 1백50명 내외라고 말했다. 이때의 친구란 지하철, 공항 등에서 만났을 때 어색함 없이 인사할 만한 사람, 술자리에서 우연히 동석해도 당혹스럽지 않을 만한 사람을 말한다. 거리낌 없이 안부를 주고받고 일상을 이야기하며 기꺼이 삶을 나눌 수 있는 사이다. 이렇게 한 사람이 안정적으로 잘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 숫자를 가리켜 ‘던바의 수’라고 한다.
던바의 수엔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학교 친구, 직장 동료 등도 포함된다. 던바의 수를 뛰어넘는 인간관계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피폐하게 한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경 쓰다가는 어느 한 사람에게도 제대로 신경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온갖 사람을 만나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이들이 어느 날 가족에게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게 뭐야”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미 있는 관계를 이룩하려면 깊은 관심, 충분한 정성, 함께 보낸 넉넉한 시간이 필요하다.
항상 바쁘게 살았는데 돌아보면 남은 게 없는 듯한 기분이 들 때, 삶은 분명히 위기에 빠져 있다. 뿌듯한 보람 대신 덧없는 공허가 벌레처럼 시간을 먹어치우는 중이다. 고대 시리아의 한 시인은 집중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삶에서 고통과 슬픔을 느꼈다. “영혼은 육체를 떠나/ 엄청난 고통을 느끼네./ 한없는 슬픔도 느끼네./ 그리고 갈팡질팡하네.” 시인에게 갈피를 못 잡고 방향을 잃은 채 산만한 삶은 악령에게 유혹당한 삶, 진실에서 멀어진 삶을 뜻했다.
집중은 신의 선물
끝없이 정보를 들이대는 휴대전화 역시 삶의 위기를 증폭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너무 많은 욕망을 자극하며,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는다. 휴대전화 탓에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바로잡고 삶의 방향을 잡기는커녕 정보에 휩쓸린 채 떠밀리듯 하루하루 살아간다. 쇄도하는 정보는 우리 주의력을 약탈하고, 산만함을 부추긴다.
집중은 신의 선물이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불필요한 소음이나 수다를 걸러내고, 아무 때나 머리에서 떠오르는 잡스러운 생각을 제거함으로써 인생을 가치 있게 압축하는 기술이다.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 심리학 교수 아미시 자에 따르면, 현대인은 휴대전화 탓에 주어진 시간의 절반 정도를 집중력을 잃은 상태로 멍하니 흘려보낸다. 이렇듯 하릴없이 보낸 시간은 아무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먼지처럼 흩어져버린다.
삶이란 복잡하고 산만한 경험을 압축하고 정련해서 통찰과 지혜로 바꾸어 가는 일이다. 이런 과정이 없을 때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 집중해서 선택하고 여과한 시간만 기억에 남아 진정한 가치를 얻는다. 주의를 기울여 의미를 이룩한 것이 늘어날 때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기
영국 켄트대학교 문화사 교수 안나 카타리나 샤프너는 <자기계발 수업>에서 복잡한 삶과 쓸모없는 정보에서 벗어나려는 금욕적 열망이 인류사에서 끝없이 지속되었다고 말한다. 예수나 붓다 같은 인류의 스승들이 설파했듯이 진리 안에서 살지 않는 사람은 삶의 뿌듯함을 얻을 수 없다. 시시한 것에 정성을 들이고, 덧없는 쾌락에 집착하는 시간이란 결국 유한한 삶의 몫을 대가로 치르고 얻은 허깨비나 다름 없다. 소모적 인간관계로 인한 내적 소란 또한 인간을 공허로 내모는 가장 큰 정신적 질병이다.
우리는 그와 반대로 존재해야 한다. 통제력을 잃고 어수선하게 사는 대신 한 번뿐인 인생을 소중한 일에 더욱더 집중해야 한다. 숱한 현자들이 복잡한 삶을 버리고 단순한 삶으로, 번화한 삶을 던지고 소박한 삶으로 나아갈 것을 권하는 이유다. 우리를 미망에 빠뜨리는 쓸데없는 관계나 헛된 욕망을 포기해야 정신적 깨달음을 얻어 진정한 삶에 이를 수 있다.
소박한 삶을 위한 세 가지 방법
단순한 삶의 비결을 샤프너는 몇 가지로 압축한다. 우선, 도시의 소음과 소란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산책하기. 이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장 자크 루소가 권하는 삶이다. 루소는 숲을 자유롭게 거닐면서 사회적 삶이 가져온 폐해를 잊고 “오롯이 나 자신이 되는 시간”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오직 자신으로서만 존재하라는 뜻이다. 자연의 숭고함, 그 우주적 율동 속에서 춤추며 형식적・관습적 삶에 순응하는 옹졸하고 하찮은 자아를 벗어던지고, 침묵과 고독 속에서 자유롭게 묵상하며 떠돌 때 비로소 자기를 되찾을 수 있다.
소비 중독에서 벗어나 자발적 간소함에 이르기. <월든>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편안하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조용한 절망’이라고 표현했다. 호화로운 카펫, 멋진 가구, 고급 요리 등을 위해서 사는 일은 덧없이 스러질 것에 삶을 투자하는 짓이다. 이는 “생을 마감할 때 올바르게 살지 못했구나, 하고 후회할” 짓이고, 쓸데없는 것에 매달리다 자기 존엄을 훼손하는 부자유한 짓이다.
과도한 물욕을 부려봐야 삶에 의미를 불어넣거나 행복을 늘릴 수도 없다. 좋은 삶은 마음의 풍요에 달렸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팀카서에 따르면, 삶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일수록 더 열정적으로 소비한다. 이들은 물질과 지위를 과대평가하는 대신 우정이나 좋은 경험은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의미가 돈을 무찌르고, 좋은 관계가 넘치는 소비를 이긴다. 탐욕과 물욕은 인간을 행복이 아니라 근심과 우울증으로 내몬다. 샤프너는 “되도록 많이 벌어서 가능한 한 많이 사들이고 쌓아두려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소로처럼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남는 시간을 모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일”에 쏟아야 한다. 소로에겐 그 일이 자연을 벗 삼아 명상과 철학에 헌신하는 일이었다. “외적으로 간소하나 내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의 방식”이 우리를 구원한다. 무의미한 물건을 계속 축적하기보다 의미있는 경험을 쌓아갈 때 인생은 풍성해진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미니멀리즘. 화면의 노예가 되어 정신없이 살기보다 전자 스위치를 끄고 현실의 자기 삶을 돌보는 일이다. 디지털 접속은 우리 관심을 지금 여기가 아니라 저기 멀리에 두게 만든다. 조지타운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칼 뉴포트에 따르면, 디지털 기기에 접속할 때 우리의 디지털 자아는 항상 딴짓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변 친구나 동료, 가족이나 이웃에게 관심을 쏟기보다 멀리 떨어진 사람이나 장소에 정신이 흐트러져 있는 셈이다.
집중이 필요할 때 온전히 현재에 머무르는 것, 바로 여기, 바로 지금, 바로 우리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 행복의 원천이다. 이 힘을 잃으면 인생 전체를 상실하는 것이나 같다. 그런데 디지털 세계에선 우리 존재성이 온갖 디지털 구멍으로 빠져나간다. 디지털 기기에 접속한 인간은 자기 생활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아 깊이 있는 사고가 불가능하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도 힘들어진다. 마음이 먼 곳에 가 있으면서 지금 이곳에 있는 나를 제대로 사고할 수는 없다.
디지털 기술의 유혹을 뿌리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의미 있고 생산적인 여가 활동을 시작하며, 친구나 연인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샤프너는 말한다. “간소하고 의미 있게 살고자 하는 욕구는 물질적 짐을 덜어내어 더 평온하고 고 귀한 문제에 삶을 집중시키려는 노력이다.” 단순한 삶이 부카의 세상에서 우리를 고결하게 만든다.
writerJang Eunsu 출판 편집인・문학평론가
editorJo Sohee
intern editorKang Ju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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