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신세계갤러리는 예술에서 반복적 조형 원리를 통해 인지되는 시각의 확장에 주목하여 <변화하는 반복>展을 개최합니다.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사진기의 출현은 예술이 더 이상 현실의 대상을 묘사하는 재현이 아닌 표현으로의 전환과 확장이라는 미적 본질을 향한 탐구로 이끌어 내었습니다. 19세기 인상주의자들의 빛과 색채를 통한 시각적 실험을 시작으로 후기인상주의와 야수주의, 표현주의 등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가치관을 담은 표현방식을 내세워 실험해 나아갔고, 회화는 점차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예술의 근원에 집중하여, 물감과 캔버스 같은 재료적 특성을 탐구하거나, 그것을 다루는 태도인 방법론의 측면으로 확장되면서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대지미술 등 형식과 표현의 범위가 확대된 미술의 양상들이 전개되었습니다. 잭슨 폴록의 반복 행위, 앤디 워홀의 복제 이미지, 도날드 저드의 반복되는 오브제, 로버트 스미드슨의 나선형 방파제 등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반복repetition의 표현은 이러한 확장된 흐름에서 발생한 조형언어로써 예술의 형태, 행위, 개념 등의 범주에서 사용되며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조형 원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반복은 동일한 행위 또는 형태를 되풀이하는 개념이지만, 현대미술의 장르 내에서는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작가의 반복적 행위는 대상과 지속하여 소통하며 고민한 사유의 흔적들로, 행위에서 다음 행위로 넘어가는 시간의 흐름과 이동의 집적을 그대로 보여줌과 동시에, 화면에서 반복되는 변화의 리듬이 유기적인 연속성과 생동감을 자아냅니다. 작품에서의 조형적 반복은 시선의 전이를 야기하는 연속된 동세의 시각효과를 넘어 유기적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즉, 반복의 리듬은 화면 밖으로 이어지고 동적인 지각과정에서 무한히 개방된 멈추지 않는 에너지로 발산됩니다. 리듬의 흐름 속에서 목도하는 동적 에너지의 생성과 소멸은 감각적으로 체험되는 회화 속 공간으로 감상자를 초대합니다. 반복의 조형 언어는 감상자로 하여금 다양한 감각들이 공존 가능한 관념의 공간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금 인식하게 합니다. 본 전시에서 마주하는 작가 4인의 작업은 반복되는 동적인 리듬감의 다채로움을 전하며 예술적 자극과 울림을 공유합니다.
김순철 작가는 한지에 앞·뒷면을 아우르는 바느질을 통해 중심에서 주변으로 확산되는 에너지가 만개한 꽃 이미지를 그려냅니다. 화면에서 한 땀 한 땀 이어지는 실의 흔적은 물성의 촉각과 퍼져나가는 동세의 시각적 감각이 동시에 전달되어 화면의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관계의 망이라는, 끊어지지 않는 연속성을 드러냅니다. 이는 과거와 미래가 순환하는 자연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차종례 작가는 납작한 두께의 판을 다듬고, 이를 켜켜이 겹쳐 독특한 리듬감과 율동감 있는 이미지를 생성합니다. 가벼우면서 단단하게 중첩된 차종례의 작업은 유기적인 흐름으로 강렬한 운동감을 전달하며 관람객에게 다가가 무한히 순환하는 서정적 심상을 그려냅니다.
예진영 작가는 알루미늄의 물성에 두드림이라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가하고, 색과 면을 잇고 쌓아 연속적인 군집의 이미지를 표현합니다. 예진영에게 반복된 두드림은 단순한 창작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감정이 분출되어 외부와 만나 예술의 미감으로 승화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행위의 반복은 나란히 배열된 조각들이 외부와 만나 반사되는 빛의 일렁임이라는 시각적인 형태의 반복을 불러일으켜 관람자를 미적 경험의 세계로 유도합니다.
황승우 작가는 돌과 대리석 등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며, 형상의 중첩이라는 결과를 드러내었습니다. 한 겹 한 겹 얇은 종이를 쌓거나, 말아 올린 듯 한 대리석 조각들은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직전까지 돌 조각을 얇게 다듬은 것입니다. 돌의 물성이 사라지기 직전까지 치달은 작가의 조각에서 반복되는 층위는 상징적인 의미로써 존재와 소멸을 성찰하게 합니다.
전시를 통해 체험되는 다양한 반복의 조형언어들은 예술가들의 정신적, 육체적 궤적을 추적해 그들만의 호흡과 감각, 몰입을 보여주며 감미로운 감상의 방식들을 제안합니다. 전시장 곳곳에서 드러나는 반복의 시그널들이 공감각의 역동성으로 다가와 감각유희로 확장되는 풍요의 시간을 함께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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