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회화의 관념에서 벗어나 회화적 혁신과 차별성을 보여준 누아주(Nouage, 엮음)의 창시자,
신성희(1948-2009)작가의 독자적인 조형언어와 정신을 소개합니다. 이번 전시는 ‘회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작가적 고민과 성찰, 다양한 실험과 해답을 담은 신성희의 회화, 콜라주와 누아주 작업 25점이 선보입니다. 20세기 이후 다양한 모더니즘 화가들은 회화 본연의 정체성-화면의 평면성, 물성 등-문제를 탐색하였으며, 신성희는 이러한 탐색을 기본으로 초기 마대작업, 콜라주, 박음질한 캔버스, 누아주라는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그 해결책을 보여줍니다.
콜라주는 판지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잘라낸 후 다시 콜라주로 재구성한 작업이며, 박음질한 캔버스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후 일정한 띠로 잘라낸 다음 미싱으로 박음질하여 하나의 화면으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작가가 마지막에 몰두하였던 누아주는 캔버스에 색을 칠하고 띠모양으로 찢은 다음 그 띠들을 엮어 묶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일견 각기 다른 양식으로 비춰지지만, 신성희가 작가노트 《캔버스의 증언》에 “우리는 입체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평면에서 태어났다”라고 밝혔듯, 2차원이라는 캔버스 평면에 3차원의 요소를 끌여들여 회화가 가진 평면성에서 벗어나려는 일관된 관심과 실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평면이면서 입체이고, 회화이면서 오브제인 작품들은 신성희를 ‘페인팅으로 페인팅를 넘어선 작가’로 평가 받게 합니다. 1980년대 한국을 떠나 마지막까지 파리에서 작업을 했던 신성희는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지적인 작품세계로 국내보다 파리화단에서 먼저 찬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 점차 신성희에 대한 집중이 시작될 무렵 갑작스레 작가가 세상을 떠나 쉽게 만나볼 수 없어 안타까움을 더했던 그의 작품들이 실로 오랜만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누아주의 찢어졌던 캔버스가 다시 엮이면서 해체와 재창조를 보여주며, 서로 묶여 이어지는 띠들이 끝이 아닌 영원함을 상징하고 있듯이 신성희 작가는 작품으로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가 평면의 캔버스에 생긴 그물구멍 공간으로 작가적 숨결을 불어넣어 회화에 생명을 부여한 것처럼, 신성희의 작품들은 공간에 새로운 예술적 생명력을 불어넣어줍니다.
이번 전시는 회화의 기존 틀을 벗어난 경계에서 빚어지는 이변에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창조성 그리고 그 안에서 탄생한 미술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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