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갤러리 본점에서는 오는 3월 23일부터 4월 11일까지 '시간의 숨, 삶의 결_박수근과 조선시대 돌조각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과 조선시대 돌조각이 공유하는 한국적 미감의 원형을 비교하면서 살펴보는 전시이다.
박수근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이자 미술에 대한 식견의 높고 낮음을 떠나 깊은 애정과 공감을 받는 작가이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공감이란 정서적인 바탕을 공유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미학적인 차원에서 납득된다는 것이다. 미술은 형식과 내용에서 무한한 다양함을 표출하며 다름의 가능성은 미술의 고유하고 중요한 특질이다. 그래서 한 작가가 모든 사람들에게 납득과 공감을 얻는다는 것은 애초에 요원한 일이다. 그런데 유독 박수근은 어떤 사람도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일까.
시대의 작가라는 말이 있지만 실상 모든 작가는 시대를 대변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스펀지와 같아서 동시대의 경제, 철학, 문화, 정서를 빨아들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완성한다. 이때 의식적이거나 의도적인 재가공을 하기도 하지만 실상 탁월한 작가들은 자신을 전면적으로 현실에 노출시키고 시대의 정신과 문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박수근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냈으며 사라지고 버려지는 우리 것을 철저히 경험하였다. 일제와 전쟁을 거친 부박한 삶의 현장에서 가난한 화가는 자신의 유년과 청년기의 정서적 토대를 완성해준 문화와 감성을 끝끝내 부여잡으려 하였다. 박수근의 작품에 등장하는 거리의 사람들과 핍진한 그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의 현대사이자 가난한 현실 그대로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모습이 비참하다든가 마냥 슬퍼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서 박수근이 현실을 보는 시선과 예술적 성취의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동정을 배제한 애정과 공감, 부정하지 않는 시선을 보여준다. 좌판을 벌이고 앉아있는 시장통의 사람, 함지박을 이고 일터를 오가는 여인, 거리에 앉은 하릴없는 노인과 어린아이에서 잎이 모두 떨어진 나목에 이르기까지 박수근의 작품에 등장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스산하다. 하지만 박수근은 이들의 모습에 말할 수 없는 격조와 숭고함을 더해냈다.
박수근이 완성한 격조와 숭고함은 현실에 예술만이 부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박수근의 이러한 아름다움은 조선시대의 돌조각이 가진 미학적 아름다움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우리 전통 돌조각은 말로 형용키 어려운 자연스러움과 천연덕스러움으로 친근한 정서를 보여준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산하가 개발과 현대화로 바뀌었지만 박수근의 시대야 야산에 흔하게 널린 것이 문인석, 동자석, 석탑과 불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석물에 대해 박수근은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며 조형화에 도입코자 애쓰고 있다."고 하였다. 조선 돌조각은 권위나 격식을 버리고, 화려함과 유려한 장식성을 애써 얻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쓰임새에 충실하되 그것을 만든 사람의 표정과 감정을 가감없이 자연스레 표현하고 있다. 작위성을 버림으로써 자유로운 감성을 얻은 것이자 박수근이 작업에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바와 통한다.
박수근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마티에르(작품표면의 요철에 의한 효과)이다. 박수근은 이러한 효과를 조선 돌조각이 가진 표면질감이자 우리 산하에 가장 흔한 화강석의 질감에서 가져오고 있다. 부단한 재작업과 반복작업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이러한 마티에르는 그림의 주제인 보통사람들의 현실과 적절히 부합하는 조형효과로 주제와 형식의 지극한 합일을 이루어낸다. 이번 전시는 박수근 작업의 얼굴이랄 수 있는 표면질감의 유화작품과 특징적인 선묘를 보여주는 수채화, 드로잉과 판화를 전시한다. 더불어 문인석, 무인석, 민불, 동자석 등 조선시대 석물이 함께 함으로써 박수근의 예술세계의 본질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작품전시와 체험으로 이루어졌다. 작품은 박수근의 23점과 조선시대 돌조각 9점이 전시되며, 박수근 작품의 모작을 전시하고 돌조각 작품과 함께 이를 만져볼 수 있도록 하여 박수근 작품을 촉각적으로 체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박수근 작품 모작과 작품세계의 개요에 대한 설명문에는 점자설명문이 병기되어 있어 시각장애인도 박수근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박수근 작품의 특징적인 마티에르와 형상을 종이찰흙에 찍어보는 이벤트도 같이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