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패션을 만나다
발렌시아가와 구찌는 아디다스와 협업하고, 자크뮈스는 나이키와 만났다.
스포티즘을 빼고 논할 수 없는 ‘요즘’ 패션 월드에 대하여.
자크뮈스의 위트 있는 디자인과 나이키의 실용성을 더해 조화롭게 완성한 자크뮈스×나이키 컬래버레이션 캠페인.
일상의 모든 사이클을 뒤바꾼 팬데믹을 기점으로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홈 짐과 홈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기구가 불티나게 판매되고, 거리 두기를 유지할 수 있는 테니스·골프·수영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렇게 운동을 시작했다가 그 맛을 알게 된 이들이 늘어나며 운동하는 것 자체가 트렌드가 되었다. 매해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는 김난도 교수는 헬시 플레저의 탄생을 2022년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다. 헬시 플레저란 건강을 뜻하는 헬시healthy와 기쁨을 의미하는 플레저pleasure의 합성어다. 기존의 건강 관리와 다른 점은 과정과 결과가 모두 쉽고, 즐겁고 힙하게 관리한다는 데 있다. 맛있는 저칼로리 음식을 먹고, 불멍으로 스트레스를 날리고, 명상을 통해 마음 관리를 하는 등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건강을 챙기는 것이 핵심이다. 즐거움과 힙함이 중요한 키워드인 만큼 패션도 헬시 플레저의 관심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왕이면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스포티한 패션이 인기를 끌게 된 것. 아디다스, 나이키, 뉴발란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는 물론이고 스포티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알렉산더왕, 마린 세르 등이 전성기를 맞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 틈을 놓칠세라 유수의 하우스 브랜드는 메가트렌드인 스포티즘을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였다. 먼저 테니스의 매력에 풍덩 빠진 미우미우와 루이 비통은 코트에서 입을 수 있을 만한 실용적이며 패셔너블한 절충안을 찾았다. 미우미우 2022 F/W 쇼에서는 당장 코트에 입고 나가도 손색없을 만큼 세련되고 경쾌한 테니스 룩이 런웨이에 올랐다. 또 지난 7월 생트로페즈에서 패션 인플루언서 키아라 페라그니, 카밀 로 등을 초대해 ‘미우미우 테니스 클럽’을 열며 테니스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증명했다. 루이 비통도 2022 프리폴 컬렉션인 ‘LV 매치’를 통해 테크니컬한 소재의 운동복과 테니스 라켓 가방 등을 출시했다. 그런가 하면 구찌와 발렌시아가는 아디다스와 손잡고 패션 판타지를 실현했다.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는 “일곱 살 때 부모님이 사준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어본 후 모든 것에 삼선(three stripe)을 다는 것이 꿈이었어요”라고 말하며 이를 발렌시아가의 2023 S/S 런웨이 위에 펼쳐 보인 것.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제품인 판타 슈즈나 아워글라스 백에는 삼선을, 아디다스의 트랙 슈트에는 발렌시아가를 새겼다. 구찌도 마찬가지다. 2022 F/W 익스퀴짓 구찌Exquisite Gucci 컬렉션에서는 구찌의 세계에 아디다스를 녹여낸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클래식을 재해석한 슈트, 바로크풍의 드레스에 아디다스의 상징을 새김으로써 브랜드 철학인 ‘불완전한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MZ세대에게 가장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브랜드는 바로 자크뮈스다. 나이키와 협업한 자크뮈스는 컬렉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스트랩에 나이키의 로고 장식을 곁들인 테니스복과 유니크한 슈즈를 선보였다. 힙한 운동 아이템에 거침없이 지갑을 여는 MZ세대와 헬시 플레저의 특성을 보여준 협업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디올은 하이엔드 헬스용품을 제작하는 테크노짐과 손을 잡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슈즈나 의류가 아닌 짐볼, 트레드밀을 제작했다는 것. 좀 더 본격적으로 헬시 플레저의 입맛에 맞춘 아이템을 선보이며 차별화를 꾀했다.
패션 브랜드가 스포츠 브랜드와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선보이는 혁신적 기술력,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정신 때문이 아닐까? 전 세계의 많은 이가 건강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스포츠 브랜드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듯 패션 브랜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포츠 브랜드는 튼튼한 마니아층은 물론이고 폭발적인 대중성을 지녔기 때문에 매우 독특한 위치에서 강력한 파워를 자랑한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하이엔드 브랜드가 협업을 했고,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수많은 컬래버레이션 역사를 증명해왔다는 점도 두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오프화이트·디올 등과 협업해온 나이키, 스텔라 매카트니와 꾸준히 협업을 이어가는 아디다스 등이 그 예다. 패셔너블과 스포티브가 정반대의 말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지만, 스포츠와 패션의 만남은 패션계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새롭고 혁신적인 에너지를 뿜으며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꾸준히 말해온 이들이 주목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변화한 점은 무엇일까? 런웨이 위에서만 감상할 수 있거나 이른바 패션을 좀 아는 사람만이 즐기는 것을 넘어 스포티즘이 패션의 한 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발렌시아가와 아디다스가 협업한 티셔츠를 입고 축구를 하거나 디올× 테크노짐 짐볼을 구매해 운동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1 NBA 최종 우승팀이 트로피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루이 비통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트래블 케이스.
2,3 아디다스와 협업한 구찌가 선보인 2022 F/W 익스퀴짓 구찌 컬렉션. 스포츠를 패셔너블하게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했다.
BALENCIAGA / ADIDAS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진행한 2023 S/S 발렌시아가 런웨이에 오른 발렌시아가/아디다스 컬래버레이션. 아디다스의 트랙 슈트를 오버사이즈로 재해석하거나 발렌시아가의 아이코닉한 트리플 S와 아워글라스 백 등에 아디다스 로고를 새겼다. 아디다스 로고를 모든 것에 적용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뎀나 바잘리아의 컬렉션.
BALENCIAGA ADIDAS
1백50만원대
JACQUEMUS × NIKE
자크뮈스의 아이덴티티로 여겨지는 스트랩과 나이키 장식을 연결해 재기 발랄하면서도 영리한 디자인적 면모를 가감 없이 선보였다. 자크뮈스와 나이키가 협업했다는 부연 설명 없이도 두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하나로 느낄 수 있게 엮은 것. 여기에 메탈릭 스우시 디테일을 더해 버킷 해트, 원피스, 브라톱, 플리츠스커트, 스니커즈 등을 출시했다. 스포티한 자크뮈스의 다채로운 면면을 엿볼 수 있는 신선한 협업 컬렉션.
MIU MIU × NEW BALANCE
1980년대에 출시한 이래 뉴발란스의 오랜 스테디셀러였던 574 스니커즈를 재해석한 미우미우×뉴발란스 협업 컬렉션. 미우미우의 2022 S/S 런웨이에서 처음 선보여 출시되기 전부터 많은 패션 인사이더의 위시 리스트에 오른 제품이다. 화이트· 카키 컬러와 블루 데님 패브릭을 활용해 해진 듯 올 풀린 디테일로 해체적인 미를 더했다. 텅에 뉴발란스와 미우미우의 로고를 새겨 눈길을 끈다.
ADIDAS × GUCCI
구찌의 2022 F/W 컬렉션인 익스퀴짓 구찌에서 선보인 아디다스×구찌 협업 컬렉션. 아디다스의 스포티한 이미지보다는 클래식을 재해석한 슈트나 바로크풍의 드레스 등에 과감하게 로고를 새기며 색다른 변신을 꾀했다. 레디 투 웨어뿐만 아니라 백과 슈즈, 모자, 장갑 등 아디다스와 구찌의 상징을 결합한 위트 있는 제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
TIFFANY&CO. × DANIEL ARSHAM
2022 NBA 올스타전을 기념해 티파니앤코와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이 협업해 제작한 한정판 농구공. NBA의 공인구로도 사용된 이 농구공은 티파니앤코의 상징인 티파니 블루 컬러로 제작하고 크리스털 다이아몬드 패턴을 새겨 희소가치를 높였다. 고급스러운 블랙 라이닝으로 마무리하고, 티파니앤코와 다니엘 아샴 스튜디오의 로고를 나란히 새겼다.
LOUIS VUITTON × NBA
스포츠와 하이엔드 브랜드의 만남을 오랫동안 제안해온 루이 비통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NBA와의 역동적인 협업 컬렉션을 제안했다. 이로써 세 번째인 LV×NBA 컬렉션은 루이 비통의 오랜 아이덴티티인 여행과 농구가 전하는 가치인 도전 정신, 공동체 정신, 동료애, 보편성 같은 메시지를 집약한 컬래버레이션이다.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여행 가방 키폴 반둘리에 55, 크리스토퍼 백팩, 워치 트렁크 등을 제작했다. 농구공 실루엣 안에 LV를 넣어 만든 그래픽 로고와 모노그램을 양각 처리한 토뤼옹 레더, 농구 골대의 네트 디테일, 트로피를 연상시키는 골드 체인을 더해 완성한 것이 특징이다.
editorLee Da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