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동안 여성들의 가사노동 중 큰 부분을 차지했던 바느질 및 자수와 같은 수공예는, 말 그대로 실용을 위한 공예로 치부되고 창의력이 결핍된 노동으로 인식되어 순수예술과는 분리되어 미술사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장르였습니다.
“실이 만든 풍경”이라는 뜻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실制풍경”展은 실을 이용한 공예가 순수예술을 만났을 때, 즉 현대미술 속에서 과거 여성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었던 실을 소재로 한 “소심한 작업”을 통하여 실이 획이 되는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강승희, 권혁, 김수자, 김시연, 김지민, 송유림, 유소라, 차수진 이렇게 여덟 명의 작가들은 회화,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각기 다른 출발선에서 실을 이용한 작업에 접근합니다.
영국에서의 유학 생활 동안 작가가 겪은 문화적 충격이나 배금주의가 만연한 현실을 코믹한 드로잉으로 기록한 후, 마치 그래피티처럼 강렬한 색감의 자수로 재탄생시키는 강승희는, 자신은 세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자 함이 아니라 저마다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현실을 담담히 보여주고자 함이라고 강조합니다.
권혁은 목탄이나 아크릴과 스티치 작업을 한 화면에 구성하는데 “Energyscape”시리즈를 통해 베니스에서의 물에 대한 인상을 마치 생명력 있는 에너지의 원천처럼 일어나고 소멸하는 풍경을 담습니다. 마찬가지로 페인팅과 바느질을 병행하는 김수자나 푹신한 캔버스에 바느질로 드로잉을 옮기는 유소라는 사변적·개인적 기록들을 일기처럼 천천히 흔적으로 남깁니다. 구체적인 형상을 배제하고 바느질로 천조각을 이어 붙이는 과정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통로로 삼는 차수진은 이차원의 평면에서 확장하여 새로운 공간을 구축하고자 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송유림은 발견한 텍스트를 실크바탕에 수놓아 직접 그린 이미지를 나란히 병치시키는 과정을 통해 숨기고 싶은 개인사와 가족사를 조심스럽게 드러냅니다.
앞선 수작업의 바느질과는 대조적으로 김지민의 “The Fan” 연작은 기성복의 라벨을 사용하는 작업으로, 수없이 많은 라벨이 모여 동심원으로 이루어 내는 아름다운 색의 조화는 역설적으로 보는 이들의 눈앞에서 자본주의가 낳은 소비욕망에 대한 표상으로 무의미하게 표류하기도 합니다.
잉여의 노동력처럼 지우개 찌꺼기를 무한히 만들어내어 이를 실타래처럼 위장을 하여 집안 실내에서 연출해서 찍은 김시연의 “Thread”는 심리적인 방어장치를 표현하고자 하는 이전 작업들과 연장선상에서 보여지며, 예민한 서정성이 전달됩니다.
이상 여덟 명의 작가들은 실이라는 모티프에서 출발하여 본인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매개체로 혹은 그 자체가 표현의 수단으로써 저마다 다른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내는 실제풍경을 연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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