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모든 발언의 무능력을 확인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술 혹은,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실감합니다. 윤동천의<병치(竝置)-그늘>은 그러한 무능력, 무가치, 무의미의 병치 지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계, 혹은 그런 불가능한 언급을 통해서라도 억지스러운 치유의 가능성을 담보하고 싶은 얘기들의 이미지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미술의 한계상황이야 역사를 통해 확인한 바이지만, 그 한계를 개탄하고 전복하려는 활동을 꾸준히 해온 수 많은 작가중 한 사람으로서 기승전결에 메이지 않는 언어적 자유와 경계를 설정할 수 없는 이미지의 포괄성을 활용해 온 작가 윤동천의 작업은 소위 일반인과 전문인의 눈(수준)의 구분을 가볍게 가로지르며 여전히 어려운 예술의 통속성과 숭고성의 구분을 교란하는 자유를 누구에게나 나누어줍니다. 퍽 극명하게 기존 자신의 방식을 따른 이번 작업은 고정된 방법, 경로를 배제하면서도 역시나 현실을 직격하고 있습니다. 설득과 대치가 불가능한 불안과 공포 절망 원망속의 젊은 세대에 대한 현실공감을 포함한 다수의 작업은 기성세대의 도덕적 당위를 표명합니다. 그것은 부모 선배세대로서의 당연히 짊어져야 할 부채이지만 예술이라는 짧은 막대기로는 절망스럽게도 해결난망한 주제입니다. 설치, 오브제, 사진, 회화로 풀어낸 짧지만 모호하게 명확한 작업들은 작가로서 매체, 장르에 국한되지 않았던 윤동천의 자유를 보여줍니다. 병치의 도구로 갈등,자유, 투쟁, 화해, 희망을 말하고 조롱과 해학의 풍부한 유머와 해석의 자유를 사이사이에 던집니다. 사유와 자기성찰을 이끌어내는 특유의 방식은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화두에서도 현상의 절박함을 은연중에 넘어설 수 있는 사유의 숨을 허락해줍니다. “예술은 일상이다(Art is Ordinary)”라는 화두는 개인의 것일 수 없습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언어로 말하고 다른 생각을 실천하며 치열하게 다름을 이루려 노력하더라도 작가로서의 진면목, 사명과 진정성은 그 일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그 일상을 종잡을 수 없거나 어디서 그 목적, 목표와 맥락이 시작되는지 모른다면 그 작가는 메시지를 잃은 메신저일 것입니다. 언제나 모태인 모던적 핵심가치에서 자양의 촉수를 거두지 않으면서도 모던적 한계에 매몰되어 금을 긋고 자멸하지 않는 메신저가 던지는 <병치(竝置)-그늘>은 사회정치적 이슈를 횡단하는 작가의 고유한 시각을 통해 예술의 일상성, 일상성의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에서 탄생하는 예술의 순환고리를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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