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신세계갤러리에서는 역사문명의 흔적을 통해 존재의 실마리를 찾는 이매리의 <시 배달 Poetry Delivery>展을 개최합니다. 작가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현장을 직접 찾아 사진으로 남기고, 그 위에 경전(經典)이나 시(詩)의 내용을 금분으로 한 줄, 한 줄 써내려 갑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잊혀진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작품에 담아 우리로 하여금 그 앞에 발길을 잠시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지층처럼 쌓여진 삶의 역사를 한 층, 한 층 파헤치며 탐색하는 이매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잊혀졌던 과거의 흔적을 지상 위로 끌어 올립니다. 지층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자갈, 모래 등의 여러 종류의 흙이 일정한 곳에 층을 이뤄 쌓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인류, 즉 우리 삶의 역사도 어디엔가 차곡차곡 쌓여 그 흔적의 장소를 만듭니다. 그것은 어느 특정 장소에 잊혀진 채 남겨져 있거나 어떠한 문자로 기록 되기도 하고, 오랜 세월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우리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작가의 고향인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는 천년 전 창건된 월남사가 소실된 자리에 형성되었던 마을이 사찰터 발굴조사라는 명목 하에 다시 사라진 곳입니다. 이 월남사지에는 그 땅에서 삶을 영위하던 과거와 현재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시간과 공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지층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작가의 작품에 시의 형식으로 지난한 과정을 통해 쓰여져 미래의 누군가에게 전달됩니다. 작품 속에 인용된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한 서사시의 일부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And(그리고)’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삶의 연속, 즉 반복되는 역사의 지층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시는 역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존재의 흔적을 탐구하는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됩니다. ‘시 배달’ 연작의 영상작품에서는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그 민족의 시를 낭송합니다. 비록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이지만 각국의 시 안에 스며있는 삶과 숨결이 또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전달되어 각 나라의 민족과 한 국가의 생성과 소멸, 인류의 미래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난 2015년부터 회화, 영상, 설치 등 작가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기록해 온 ‘시 배달’, ‘지층의 시간’, ‘캔토스의 공간’ 등의 연작을 선보입니다. 우리의 삶과 역사의 지층에 담겨진 과거의 모습을 다시 드러내 용기 있게 마주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지금, 아주 평범했던 우리의 일상도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들 거라 공감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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