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남은 동서양 거장들의 명화를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흥미로운 ‘디지털 회화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수 세기 동안 미술사책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며 변하지 않는 가치를 고수해 오던 명화 속 이미지는 그의 작품 속에서 폭격을 맞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들어버리거나 말라버리기도 하며, 눈이 내려 쌓이기도 하고 해가 뜨고 지기도 한다. 이처럼 이이남의 작품은 동서양의 고전명화들을 동시대의 미디어 아트로 탈바꿈시켜 대중과 소통을 유도한다.
이러한 대중친화적인 이이남의 미디어 아트는 공익광고, 영화, 그리고 스마트TV 콘텐츠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관람객들에게 성큼 다가선다.
이이남은 기술적인 매체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번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보이지 않는 빛>은 시각예술의 근본적인 속성인 ‘빛’ 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여준다. 빛을 어떤 방식으로 그리는가의 문제는 미술의 역사와 함께한다. 빛은 대상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하는 물리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희망’ ‘신’ 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빛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있어 주요한 탐구의 대상이었으며 그것을 캔버스에 옮기기 위해 화가들은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이전 사조에서도 빛은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
일상생활을 주제로 풍속화를 주로 그린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는 특히나 실내의 촛불이나 등불을 사용했다. 이러한 빛의 사용은 일상의 평범함을 넘어서는 신앙과 명상의 극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이이남은 바로 이 라 투르의 <막달라 마리아>를 미디어 아트로 재탄생 시켰다. 조르주 드 라 투르가 그린 촛불은 이이남의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움직임을 부여 받음으로써 미디어 아트라는 동시대적 성격을 갖는 동시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의 작품으로 미래의 시간까지 뻗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빛은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아날로그 TV 의 망점, 그리고 디지털의 ‘0’ 과 ‘1’ 의 신호로 대치되어 왔다. 전시장 입구에 걸려있는 호롱불은 기름을 불태운 불꽃 대신, 1인치 디스플레이로 구현된 디지털 빛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이남은 이로써 동시대의 일상 중 많은 부분이 이렇게 디지털적 경험으로 치환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반대로 TV를 구성하는 패널 뒤편에 양초를 두어 자연 그대로의 빛이 패널을 투영하여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디지털 매체의 발달이 결국 빛을 재현하는 역사의 맥락과 닿아 있음을 언급한다.
이이남이 근래에 들어 집중하기 시작한 디지털 오브제 시리즈는 고전의 재해석이라는 기존의 맥락과 더불어,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되는 평면뿐만이 아니라 오브제 형식의 입체성까지 새롭게 정립해나가고 있다. 이처럼 이이남은 점차 발전되는 시각예술 범주에서 디지털이라는 매체가 제공하는 새로운 시각경험의 가능성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빛>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미디어 아트의 영역을 확장해 나갈 이이남의 앞으로의 행보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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