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정원을 통하여 시각의 다의성과 표면의 은유적 의미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드로잉의 선은 생태계를 순환하는 물처럼 전이를 반복하며 시간과 공간의 지층을 넘나들며 생성된다. 상향적 힘과 하향적 힘의 선율은 긴장과 이완의 리듬으로 대위법적 춤을 춘다. 세포막의 안과 밖의 사이와 같은 경계선에서 새벽의 눈은 상반성과 항상성 사이의 공간을 공감각적인 은유로 연결한다. 무의식과 의식을 공명시키는 새벽의 정원은 시각성의 잠재태를 표면으로 드러내면서 시적정원으로 되어간다.
새벽에 산책하며 나는 ‘시적정원’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새벽은 반투명한 몽환적인 안갯속을 걷는 것과 같은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유희가 춤추는 미적경험의 공간이다. 새벽은 얼음처럼 투명하게 의식을 살아 숨쉬게 하며 당겨진 활시위와 같이 의식을 긴장시키지만, 또한 비이성적인 은유의 유희가 이성적 의식의 공간과의 경계구분을 무효화시키면서 긴장의 끈을 풀어 생각을 자유롭게 한다. 사물의 형태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내부의 경계면으로서의 표면인 것과 같이 새벽은 어둠과 밝음 사이에서 밤과 낮의 경계면으로서의 표면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는 새벽은 2차원적인 평면적인 표면이 아니라 깊은 물 속처럼 다층적인 깊이공간의 지층으로 다가오는 ‘시적정원으로서의 사이공간’이다.
그러한 ‘시적정원’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렌티큘러Lenticular 작업을 통해 다층적인 공간적 깊이의 의미를 담았다. 렌티큘러는 2차원의 평평한 표면이지만 두 눈의 양안시차와 특수한 렌즈를 이용하여 3차원적인 가상의 공간이 지각되게 하는 방법이다. 이 사이공간은 화면의 단순한 평면적 표면의 의미를 넘어서 내가 새벽에서 발견하는 다층적인 시적공간의 은유적 조합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장이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시공간적 경험의 지층을 내재하고 있다. 주사위의 눈은 일상의 표면 너머 보이지 않는 안쪽에 있는 ‘시간의 여백’을 보는 눈이며, 복합적이고 다의적인 공간인 시적정원을 보는 은유적인 상상의 눈이다.
나는 작가로서 스스로를 정원사로 여기며, 식물성의 생태적 이미지와 회화적 요소로 미적 공간pictorial space을가꾼다. 회화와드로잉, 사진, 컴퓨터 등 필요한 방법들을 결합하여 표면 너머에 있는 사이공간에 씨를 뿌리고, 식물을 심고, 시적정원의 공간을 가꾸는 정원사이다. 그리고 스스로 ‘정원되기’를 꿈꾼다. 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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