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의 사진 신세계 본관은 1930년에 준공된 근대건축물로 2006년의 대대적인 리뉴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 공사에는 효율성을 갖추면서도 우리나라 최초 상업건물의 역사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때 가장 핵심적으로 고려되었던 곳이 중앙의 로툰다Rotunda 구조와 넓은 계단입니다. 이 곳은 명실상부 건물의 개념적 실질적 중심이라는 상징성과 낡은 시설을 쾌적하게 바꾸고 고객 이동의 편리를 보장하며 넓은 매장을 확보하려는 현실적 공사목적이 상충하는 곳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계단의 원형을 지키기 위해 보통 쇼핑공간에서 중앙에 위치하는 에스컬레이터가 협소한 일인용으로 건물 구석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김도균은 신세계 본관 건물 중 바로 이 계단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이 공간에서 역사적인 흔적을 찾기보다 건축적 구조를 보았습니다. 건축가의 눈이기도 한 그 시각은 한껏 차려 입은 ‘모던걸’, ‘모던보이’가 드나들었을 개화기 이래, 최신 패션을 선도해온 쇼핑공간의 온갖 이야기들을 걷어내고 건축의 구조적 본질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러자 계단의 위용이 드러나고 1927년 설계도면에만 담겼던 상상이 80여 년을 뛰어넘어 김도균의 사진에 담겼습니다. 역으로는 역사와 전통의 상징이 된 이 기념비적인 계단이 시간의 소거와 함께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 같은 초현실적인 화면이 되었습니다.
김도균은 사진의 대상이 되는 피사체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공간감, 원근감, 양감 같은 3차원적 요소는 의도적으로 무시됩니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자동차, 차창 밖의 풍경, 거대한 건물도 여타의 이미지와 개념요소들을 배제한 채 평면으로 제시됩니다. 축적된 컨테이너 또한 규모가 주는 압도적인 무게감보다 단순한 색채 배열이 먼저 보입니다. 공간감과 입체감이 먼저 인지될 수 밖에 없는 건축물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에서도 현실의 감각을 무력화시키고 가상의 감각을 증폭시킵니다. 건축 전체 외관을 가늠할 수 없는 과감한 재단과 삭제, 부분에 초점을 맞춘 앵글은 대상을 더욱 스펙터클하고 낯설게 만들어버립니다.
매우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그 어떤 것보다 낯선 아이러니함은 그 사진을 찍은 바로 그 장소에 작품이 걸렸을 때 더욱 증폭됩니다. 신세계 본관의 계단을 찍은 <sf.Sel-15>는 바로 그 계단에 걸렸습니다. 무심히 계단을 올라가던 관객은 정면에서 마주친 데자뷰처럼 보이는 사진을 통해 이 공간의 존재감을 재인식하고 순식간에 늘 다니던 곳의 기이한 이질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식의 경험은 본관 공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엘리베이터 홀, 매장 사이 벽면, 복도 끝의 벽 등의 작품은 관객을 순간순간 달리는 차 안, 방 한 구석, 건물의 모서리에서 우주공간, 저 먼 미래 혹은 미지의 공간으로 순간이동 시켜줄 것입니다.
김도균의 사진은 대상에 대한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텅 비어있는 공간으로 상정됩니다. 그 공간은 관객에게 해석과 상상의 여지로 자유롭게 남겨졌습니다. 더불어 그 작품들이 설치된 신세계 본관은 화려한 디스플레이로 최신의 유행 아이템들을 선보이는 패션의 메카입니다. 마네킹이 놓여 있고 낮은 조명과 유색패턴의 벽지가 있는 공간에 걸린 김도균의 사진은 기존 갤러리와 미술관의 하얀 전시장 벽에 걸려 있을 때와 다른 흥미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일상과 패션문화의 환상공간 안에서, 그를 비틀어 다른 차원의 환상을 유발하는 김도균의 사진이 만들어내는 묘한 뒤틀림과 파열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