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신세계갤러리에서는 자연의 푸름이 찾아오는 봄을 맞이하며 식물의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여섯 작가의 전시 <PLANT SCENE 식물이 가득한 풍경>을 개최합니다. 전시 제목에서 의미하듯 이번 전시는 식물을 소재로 한 회화, 사진 시리즈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 김주연, 김지영, 나현, 방명주, 이정록, 허수영의 작품 28점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동양의 산수화와 서양의 풍경화에서 자연은 예술 작품의 대상이며 동시에 이데아였습니다. 1960년대 현대미술에서 대지미술이라는 장르를 통해 자연은 곧 창작의 캔버스가 되기도 하였고, 오늘날 동시대 미술에서 생명공학과 만나 미디어아트로 그리고 공감각적인 대형 설치작품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이처럼 자연의 특정장소에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자연의 변화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까지, 그리고 자연을 자신만의 언어로 새롭게 표현하면서 예술 작품 속 ‘자연’이 갖는 의미와 그 표현방식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김주연은 입었던 옷들에 씨앗을 심고, 그 싹 틔운 옷을 촬영한 사진 <존재의 가벼움> 연작을 전시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찾아온 ‘존재에 대한 사유’를 씨앗이 발아, 성장, 소멸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정록의 <Nabi>는 현실세계를 넘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 ‘무엇’과 현시적인 ‘무엇’을 넘나드는 나비의 이미지를 오묘한 숲 속에 담아 사진으로 표현합니다. 특정 장소의 선정에서부터 오랜 시간 반복되는 설치와 촬영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한 장의 사진에서 영혼을 상징하는 나비가 전달하는 초자연적인 기운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현의 <난지도> 연작은 작가가 진행하고 있는 바벨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식물학자, 화훼전문가와 함께 난지도 공원에서 채집한 귀화식물들의 표본을 프린트하여 그 위에 드로잉으로 기록을 남깁니다. 난지도에 서식하는 귀화식물 여러 종의 기록자료를 남기는데도 의미가 있지만 식물을 테마로 역사적 사건을 탐구하는 작가의 사회 문화적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워 보입니다. 방명주 작가의 <Rise Raise> 연작은 부산의 오래된 식물원의 장면들을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작가의 일상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식물원의 이미지는 ‘온실’과 ‘가정’, ‘식물’과 ‘가족’이 오버랩 되어 식물원에서 가정으로 개념이 확장됩니다. 하나의 화면 안에서 사실적인 풍경을 중첩하는 허수영의 <Forest>, <Grass> 회화는 구상적인 동시에 추상적입니다. 일상 풍경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의 사실성이 사라지고, 그 존재의 실체를 찾아가는 반복적인 그리기의 결과물은 관객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합니다. 쉽게 찾아보긴 힘든 작은 풀꽃을 크게 확대하여 그 존재와 의미를 부각시킨 김지영의 <여기, 다시 꽃 피우다>는 보잘것없고, 중요해 보이지 않는 대상과의 관계를 하나, 하나 채집하듯이 이야기로 엮어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작가들에게 자연은 하나의 단순한 표현대상이기도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함께한 작가의 시간 역시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은 보이는 것을 기록하면서 언제나, 그리고 그 본성상, 보이지 않는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미술평론가 존 버거(John Berger)의 말처럼 작품 속에 보이는 식물의 이미지들이 보이지 않는 작가들의 메시지를 불러냅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식물과 인연을 맺은 여섯 작가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자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녹음이 선사하는 편안함을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해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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