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마무리하며 광주신세계갤러리에서는 음악과 미술이 함께 하는 전시를 마련했습니다. 긴 시간 꾸준히 열과 성의를 다한 작업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음악번안시스템’으로 클래식 음악을 시각화하는 이다희 작가는 <푸른 전주곡 WTC BWV853>展에서 바흐(J.S. Bach)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The Well Tempered Clavier Book)』을 회화로 표현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클래식 음악의 수집된 데이터와 화음을 분석한 드로잉과 수채화, 그리고 곡을 구성한 마디, 마디를 40점의 회화로 표현한 ‘푸른 전주곡’의 다양한 연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평생을 건반음악의 작곡에 몰입했던 바흐의 대표 작품인 WTC의 제1권은 1722년 독일 쾨텐에서 완성되었고, 제2권은 1738년에서 1742년 사이에 라이프치히에서 편집되었습니다. 각 모음집은 열두 개의 장∙단조로 작곡된 24개의 프렐류드(prelude)와 푸가(fugue)로 되어 있는데,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가장 뛰어난 지휘자 한스 폰 뷜로우(Hans von Bülow)는 바흐의 <평균율>을 음악의 구약성서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신약성서로 비유할 정도로 음악적 가치가 큰 작품입니다. 바흐는 형식적인 틀로부터 매우 자유로운 프렐류드를 다양한 양식과 기법을 사용하여 훌륭한 음악적 내용을 갖게 하였고, 그 음악적 다양성과 작품의 독창성은 후대에 프렐류드가 독자적인 장르로 위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WTC 1권의 1∼12번 중에서는 푸른 빛 감성을 가득 담고 있는 8번 Prelude in e♭ minor BWV853을 시각화하였는데, 이것은 3박자의 느린 무곡(舞曲)인 사라방드(Sarabande)를 연상시킵니다. 가로 형식의 캔버스 한 점이 곧 곡의 한 마디를 나타내고, 3박자의 화음을 표현하기 위해 각 캔버스 안에는 작가의 철저한 분석을 통해 표현된 3개의 색면이 각 마디의 음색과 음형을 담고 있습니다. 색과 형이 규칙적으로 반복을 이루며 추상화와 같은 화면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여러 개의 소리가 섞여 각기 다른 화음을 만들 듯이 그 색면의 경계가 때로는 뚜렷하게, 때로는 서로 뒤섞여 각 화음의 울림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감성을 시각적으로 전달해 줍니다. 작가는 이처럼 조율된 소리의 집합이 하나의 화음을 만드는 체계에 매료되어, 그 체계를 스스로 분석하여 음악이 연주되는 순간을 회화로 기록하기 위해 WTC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이번 전시를 위해 사운드 아티스트 Daniel Morrison Neil과 협업하여, 재편곡 된 WTC를 갤러리 현장에서 듣고 보면서 곡의 전반적인 흐름뿐만 아니라 제시된 주제와 변형패턴을 눈과 귀로 동시에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바흐가 WTC를 창작하면서 가졌던 교육적 의도는 음악의 근본 원리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뿐만 아니라, 음악을 예술적으로 다양하게 전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아니스트와 작곡가, 음악 전문가에서부터 학생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기도 하며, WTC를 작가가 자신만의 ‘음악번안시스템’을 기반으로 그리는 첫 회화 작품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2011년부터 꾸준히 클래식 음악에 집중해 형식에 따른 번안 시스템 정리와 연주된 소리를 기록하여 국내와 영국을 무대로 다양한 맥락에서 ‘음악번안시스템’을 소개해왔습니다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수와 문법으로 이뤄진 절대 추상 예술인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음악번안시스템’을 더욱 체계화하고자 영국의 글래스고 예술대학에 입학하여 회화 석사를 취득 후, 계속해서 국내외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WTC 프로젝트를 발전시켜왔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수집한 자료 및 분석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준비한 ‘음악번안시스템’으로 ‘눈으로 보는 음악’을 그리는 이다희 작가는 ‘화려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서 가늠되는 작업’에 높은 평가를 받으며, 제21회 광주신세계미술제 신진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작년 광주신세계미술제 1차 선정작가전에서 ‘음악번안시스템’의 연구과정을 전시하며, 작품에 대한 높은 몰입도로 충분한 설득력과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 결과물인 ‘푸른 전주곡’을 바흐의 음악과 함께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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