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바이러스 비상사태 발령을 해제함에 따라, 이제 가까운 우리 주변 곳곳에서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3년 4개월간, 직접 만나서 소통할 수 없었던 갑갑하고 제한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뉴노멀 시대에 적응하며 새로운 일상의 반복적 행위들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승화시켜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우리에게 그것을 추억하고 기억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혼의 소리꾼’ 장사익은 ‘찔레꽃’, ‘꽃구경’, ‘봄날은 간다’ 등의 노래로 유명합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을 할 수 없던 지난 몇 년간 스마트폰 카메라로 동네를 산책하며 주변을 촬영해 왔습니다. 대중 앞에서 노래하며 함께 호흡할 수 없었던 답답한 시간은 작가의 렌즈를 벽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채집한 다양한 벽의 한 부분을 사진으로 표현한 이번 전시 《장사익의 눈》을 통해 노래하는 장사익이 아닌, 사진작가 장사익으로 대중과 만나 소통하고자 합니다.
장사익은 1994년, 45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했음에도, 진정성 있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한국의 대표적인 소리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국악을 전세계에 알리며, 특히 우리 시대의 삶과 희망을 노래하는 소리꾼으로 현재까지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평소 붓글씨를 가까이하며 생활해 온 장사익은 마치 노래하듯 유려한 글씨체로 서예 전시를 개최하는 등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예술 활동을 펼쳐 왔습니다. 붓글씨와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마당에 핀 들꽃들의 이야기, 아버지의 말씀, 음악 활동 중의 다양한 심경 등 주로 일상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고, 그 안에서 포착한 장면들을 사각의 프레임에 담아 사진으로 남겨 왔습니다.
지난 3년 여의 팬데믹의 시간 동안 장사익은 사진이라는 새로운 예술적 장르에 도전하며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곳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책 중에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는 낡은 벽면과 틈새, 그 위에 남겨진 낙서와 각종 부착물의 흔적,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의 모서리와 벗겨진 페인트칠 등 스마트폰을 활용해 주변의 소소한 풍경을 찍은 사진이지만 오히려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추상화처럼 보입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남긴 2만여 장의 흔적들을 사진 전시로 보여줄 것을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일상에서 함께 한 노래와 글씨,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체득된 미적 감수성이 그를 무의식 중에 사진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장사익이 지난 팬데믹 사태로 음악인으로서 공연을 하지 못해 마치 벽을 아주 가까이 마주하는 것과 같은 답답했던 지난 3년의 흔적이자 결과물입니다. 피사체로 벽을 선택하고, 익숙한 음악이 아닌 사진이라는 매체를 선택한 작가의 속마음이 궁금해집니다. 40여 점의 새로운 시선으로 포착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상을 함께 공유하며 지난 팬데믹 시기의 아픔을 서로 보듬고, 함께 치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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