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와 기록 2012년 뉴욕의 맨하탄과 퀸즈 사이 이스트강에 자리잡은 루스벨트 섬에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기념하는 공원 FDR(Franklin D. Roosevelt Four Freedoms Park)이 문을 열었습니다.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I. Kahn, 1901-1974)이 이 공원을 설계하고 타계한지 37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바니 쿨록은 이 역사적인 건축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이 프로젝트는 Aperture 출판사에서 『Building』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신세계갤러리의 이번 전시는 이 기념비적인 기록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루이스 칸은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엄격한 조형적 규칙과 절제된 형태의 건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은 예일대학 미술관(1952~1954), 소크 연구소(1959~1965),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1962~1976)등이 있습니다. 루이스 칸은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을 건축하던 중인 1974년 뉴욕에서 사망했습니다. FDR공원은 그의 나이 73세인 1973년 설계를 완성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뉴욕시의 재정악화로 실현되지 못했다가 아들인 나다니엘 칸의 노력으로 37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바니 쿨록은 ‘빌딩’ 프로젝트를 위해 루이스 칸이 설계한 여러 건축물을 직접 방문하고 그가 쓴 글과 강의록을 찾아보는 등 다각도로 연구에 임했을 뿐만 아니라 FDR의 건축현장을 작업실로 생각하고 그 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프로젝트는 공원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쿨록이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완성한 사진은 얼핏 보면 루이스 칸의 이 기념비적인 공원을 담은 사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무거운 건축자재들을 들어올리고 옮기고 쌓는 역동적인 공사현장을 담았다고 하기엔 고요하고 정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루이스 칸이 ‘빛과 침묵의 건축가’로 불린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쿨록의 사진을 곧바로 이 위대한 건축가의 개념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루이스 칸은 건축에 있어서 재료의 물성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들 나다니엘 칸이 밝힌 대로 그는 재료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이기라도 한 듯 그것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네가 벽돌에게 ‘벽돌아, 넌 뭘 원하니?”라고 말하면, 벽돌은 ‘난 아치를 좋아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다니엘 칸, 「강 속의 돌」, 『빌딩』, aperture)
쿨록은 또한 루이스 칸이 “건축물에 닿기 전에 빛은 자기 존재를 모른다”라고 말 할 정도로 빛을 중요시 했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건축가의 개념에 따라 건축 현장 속에서 하나하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을 고르고 찾아내어 그 재료가 가지는 특성, 그리고 그것이 빛과 만났을 때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밀착된 시선으로 담아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 스티븐 홀은 그의 사진을 두고 “마치 쿨록이 현재 진행중인 칸의 작품에 조응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것과 같다.”(스티븐 홀, 「빛나는 침묵」, 『빌딩』, aperture )라고 평가했습니다.
루이스 칸이 하찮은 벽돌 한 장, 돌 하나에 귀를 기울였듯이 쿨록은 공사 현장의 구부러진 철사 하나, 종이 조각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들이 하는 소리와 형태를 담아냈습니다. 그의 사진은 40여년의 시간의 간극을 넘어서 위대한 건축가와 젊은 사진작가가 그들 각자의 개념을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대화를 담은 듯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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