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신세계백화점의 고미술전시는 당시 장안의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오늘 내로라하는 고미술 컬렉터들이 향수 삼아 이야기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그중 1971년 1월에 열렸던 첫 번째 신세계갤러리 <李朝木器>展은 고목가구 컬렉션의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하였다는 평을 얻었다. 판매를 겸한 <李朝木器>展은 열네 차례에 걸쳐 연례적으로 열려 전통문화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키는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맥을 이어 신세계갤러리에서 2010년 개최한 전시가 <선비문화와 목가구>展 이었다. 이 전시는 사랑방을 중심으로 사용된 생활소품과 목가구를 통해 조선시대 지식인 남성의 정신적 면모와 미적 수준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그 시리즈 전시로 열리는 <규방문화와 목가구>展은 조선후기 우리 선조 여인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규방의 공예품과 목가구 160여 점을 전시한다.
‘규방(閨房)’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으로, 여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은 물론 그에 기반을 둔 독특한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었던 공간이었다. 규방문화는 안살림으로 통칭하는 대대로 이어가는 가사노동과 독서, 서예, 그림, 자수놓기 등 다양하고 실용적인 여가 취미활동으로 이루어진 옛 여인들의 문화를 의미한다. 더불어 규방은 인성의 바탕이 되는 가정교육이 비롯되는 곳이자 가정의 중심으로서 한집안의 성격과 분위기, 정서를 아우르는 가풍이 만들어지는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여성중심의 규방문화는 남성의 문화에 비해 큰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다분히 정치적이고 대외적인 성격이 큰 사랑방과는 다른 차원에서 조선시대의 보다 내밀한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규방문화와 목가구>展은 조선시대 여인들의 안목과 미감이 담긴 문화유산인 생활소품과 목가구를 통해 전통적인 규방문화의 일단을 볼 수 있는 전시이다.
전시된 작품으로는 놀랍도록 화려한 화각자가 있는가 하면 아기자기한 바늘쌈지 실패 골무 가위가 담긴 개성 있고 다양한 반짇고리가 출품되었다. 화로의 부젓가락과 인두는 쓰임새를 배려한 섬세한 공을 느낄 수 있으며, 교양을 위한 책을 읽고 살뜰한 마음을 담은 언문편지를 써내려 갔을 경상과 서안 옆에 연상과 화려하게 장식한 화각붓, 벼루가 함께 한다. 흐트러짐 없는 외모관리를 위한 다양하고 화려한 화장구와 장신구, 면경, 빗접, 좌경 등은 아름다움을 향한 여성들의 오랜 욕망을 보여준다. 실용적이면서도 단아한 장식미를 갖춘 장, 농과 함께 다양한 목적과 실용의 함들이 안주인들의 섬세하고 높은 안목을 보여준다.
유교적 교양과 대대로 이어온 생활의 지혜를 갖춘 여성들이 사용한 규방의 생활용품들은 쓰임새에 적절하면서도 소박하고 아름다운 장식성을 담은 세련된 멋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의 사회적 격조와 규범을 지키면서도 안주인의 개성 있는 요구와 조건에 맞춤 한 장인의 수고가 깃든 명품은 우리 문화의 깊이와 수준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옛 선인들이 쓰고 아끼던 물건에서 상상과 공감을 이끌어내다 보면 오랜 시간의 간극을 넘어선 놀랍도록 가까운 일치감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획일화되고 인스턴트화 된 생활소품에서 느낄 수 없는 높은 격조가 서린 아름다움을 보다 보면 우리가 잃어버렸지만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규방문화와 목가구>展은 그런 공감과 미적, 지적 자산을 발견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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