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남 [빛의 묘법]展을 개최하며 정주하지 않는 자세로,
차안(此岸)이 아닌 피안(彼岸)을 지향하며 다양한 작품세계를 펼쳐온 김명남의 [빛의 묘법]展을 개최합니다.
진주에서 태어난 김명남은 활발했던 국내활동을 접고 1993년 프랑스로 이주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감수성이 묻어나는 수채화로 한국의 산동네와 자연을 그리고 개인적 심상이 담긴 정물화를 그렸습니다. 유화를 중시하던 당시 화단 분위기에서 수채를 선택한 것은 유화의 독성을 이겨내지 못했던 작가의 건강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료, 매체의 본질성에 몰두하며 물(水)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상징에 대한 깊은 천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김명남은 기존 사용하던 수채 외에 다양한 재료들을 실험하였습니다. 재료의 물성이 거칠게 표면화된 작업이나 한지 등 각종 재료를 올린 콜라주, 다양한 판화기법이 어우러진 작품들이 시도되었습니다.
김명남은 프랑스 이주에 대해 “안주하던 곳에서 벗어나 내가 가진 정서나 생각과 다른 외부세계를 경험하고, 낯선 세상의 새로운 관점으로나 자신과 작업을 바라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정주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김명남이 시도했던 수많은 매체 실험과 끊임없는 작품의 변화를 만들어낸 근원입니다.
최근의 작가가 행하고 있는 매체 실험은 백색의 종이 위에 드로잉을 하듯이 바느질을 하고 작은 오브제를 결합시키거나, 송곳과 칼로 구멍을 뚫고 스크래치를 내는 것입니다. 이 작품들은 종이의 물성에 사소한 변화만을 주었기 때문에 얼핏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두고 프랑스 미술평론가 필립 피게(Philippe Piguet)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갈망해 온 어떤 상황에서든 시선이나 몸을 통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작품의 주요 구성요소인 ‘여백’과 ‘구멍’, 그로 인해 생기는 ‘빛’과 ‘공간’이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시선의 시도와 입체적 해석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수채화와 판화에 보이는 ‘투명성’과 점점 늘려온 화면의 ‘여백’은 “작품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개입하면서 완성된다”는 동시대 미술의 화두이자 김명남 작업의 근저를 확인케 합니다.
최근의 하얀 작품들은 하나의 시리즈로 보이지만 미세한 차이로 나뉩니다. 수묵화의 준법을 보는 듯 다양한 방식으로 종이 위에 스크래치를 내고 구멍을 뚫어 기록해나간 작품은 [하얀 묘법] 연작이고, 작은 오브제와 이미지를 결합시키고 이를 연결하는 듯한 바느질로 화면 위에 드로잉을 펼친작품은 [저 너머] 연작입니다. 작가의 삶의 여정이 녹아 있는 이 작품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작가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놓인 상황과 관람자의 시선에 의해 완성됩니다. 최소한 개입함으로써 상상의 여지를 무한으로 열어두고 있는 이 작품들은 사람 사이의 관계,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것들, 항상 나아가고 있지만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의문들을 연상케 합니다.
이번 전시는 최근작인 [하얀 묘법], [저 너머] 연작과 더불어 이들 작품의 등장이 필연적임을 보여주는 1990년대 이후 작품이 함께 소개됩니다. 도자 설치 회화 등 다양한 매체의 변주 속에 한 곳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를 확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작품에서 오랜 시간 작가가 보여주고자 노력해온 ‘저 너머’의 세계와 그가 겪은 삶의 체험으로 빚어진‘빛’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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