極端의 克服
_목수와 화가 이 전시는 서양화가 김태호와 목수 이정섭의 만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두 작가는 다루는 매체는 다르지만, 담백한 조형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간결한 미감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두 작가가 이 전시에서 교감을 나눕니다.
김태호 작가는 사물의 본질을 깊이 고찰하고 곁가지를 생략하여 극도로 절제된 색과 형태를 사용합니다. 미니멀한 캔버스 작업들은 공간의 특성에 맞추어 배치됩니다. 각 프레임의 외곽선, 패턴의 조합은 전시공간을 넓게 드로잉 합니다. 입방체 패널로 시작하여 공간으로 연결되는 구성력은 그 자체로 작품의 주제가 됩니다. 여백의 울림이 느껴지는 공간에 작가의 철학적 주제의식이 더하여져 사색적인 성격이 부여됩니다. 삶과 죽음, 슬픔에 대한 은유,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라는 경전의 문구 등이 심미안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감을 여러겹 덧칠하여 옥색, 연회색의 아련한 색감을 보이는 작업 또한 고대 인도 철학에서 자비심을 의미하는 ‘카루나(Karuna)’의 시각적 발현입니다.형상은 사라지고 ‘보여지는 그것 자체’가 작품이 된 명상적 작업들입니다.
이정섭은 우직한 목수로, 나무 자체의 물성이 살아있는 단순한 가구를 만듭니다. 차분한 그의 가구는 자신의 경험과 과거를 재구성한 산물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 여행에서 본 뒷골목의 단상이 나무 결에 녹아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구를 ‘군더더기가 없는 조선의 가구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선시대 명장들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간결한 선과 면의 교차, 재료 자체의 자연스러움, 생생한 나무의 질감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정제된 미감이 돋보이는 블랙우드는 특히 단순미가 돋보이며, 공간에 설치될 때 질서와 안정감을 획득합니다. 이 두 작가의 만남은 절제된 양식의 조화와 함께 서로의 주제 의식, 내적 의도를 교감한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통적 캔버스 작업을 탈피한 화가 김태호와 가구 디자이너라 불리기를 기피하는 목수 이정섭은 전시장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창’으로 마주합니다.그들에게 극단의 극복이란 미니멀리즘이라는 형식주의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태도와 의지, 혹은 대안일 수 있습니다. 겉치레 없는 목수와 화가의 교우(交友)는 오랜 벗을 만난 듯 침묵의 깊이와 기류만으로 편안한 풍경을 만듭니다.
2015. 5. 신세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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