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빚었던 첫 그릇은 쓰임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었을 겁니다. 쓸모 없는 그릇은 허망하죠. 이영재 그릇은 그 쓰임을 화두 삼아 만들어집니다. 모든 쓰임은 쓰는 이의 생활에서 생겨납니다. 생활과 동떨어진 쓰임새는 일방적이어서 불편합니다. 그릇을 빚는 사람이 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고, 그 사람의 생활의 표면에서 나아가 삶의 내면까지 가야 쓸모의 구체성과 아름다움이 완성됩니다. 이영재 그릇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첨단의 미학적 도가니에서 제련해내거나, 모던적 가치로 벼려내고, 전통과 관습의 높은 경지를 도달한 그릇이라도 도예가의 진정성이 우러나지 않는다면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실용과 효율성이라는 근대의 외피에 둘러싸여 있지만 우리 고갱이의 감각과 감성, 혼이 바라는 모호한 갈망이 분명히 존재하는 한 말입니다. 한국 도자의 고유한 특징과 정서가 바우하우스적 실용미를 비롯한 이영재의 수 많은 개인적 집단적 경험에 녹고 엉겨서 만들어낸 독특한 아름다움은 ‘한국적이다’ ‘현대적이다’와 같은 단편으로는 지시할 수 없는 이영재 그릇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나이 들어갑니다. 쓸모와 아름다움으로 완성된 그릇조차 시간에 따라 변해갑니다. 늙고 길들여집니다. 낡아지는 그릇이 사람과 풍경, 환경에게 스며듭니다. 반대로 사람이 그릇에게 길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릇과 쓰는이가 물리적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넓고 깊고 오래갈수록 좋은 그릇일 겁니다. 이영재 그릇의 세 번째 아름다움입니다.
이번 전시는 1972년 독일로 건너가 도예와 미술사를 공부하고, 40여 년 넘게 물레를 돌려 생활자기로 호평과 사랑을 받고, 현대미술가로서 독보적 가치를 인정받은 이영재의 도자세계를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이영재 작가가 대표로 있으며 1924년 창립된 이래 생활에 적합한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자는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실천해온 마가레텐회에 Margaretenhohe 공방의 생활자기와 독일 뮌헨현대미술관 Pinakothek der Moderne를 비롯 유럽 등 세계유수의 미술관에서 선보인 이영재의 대표 작품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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