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광화문 제자리 찾기 공사가 진행 중일 때 공사장에는 바코드와광화문 형상이 겹쳐있는 가림막이 세워졌다. 광화문의역사성을 보여주는 배경에 점과 바코드를 이용해광화문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겹쳐 그린 가림막이다.양주혜의 대표적 공공미술작품으로 그의 작업 특징을 가장 선명히 나타내고 있다. 양주혜의 작업은 항상 시간과 결부된다.
유학시절 읽어내기 어려운 불어로 된 책 위에 글자를 지워나가듯 색칠을 한 것이 그가 30여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색점 작업의 출발점이다. 하나의 색점 위에 또 다른 색점을 찍어나가면서 지난 시간을 감추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힌다.수 많은 색점을 만들고 지워나가는 과정이 곧 시간의 기록이며 작가는 이렇게 점을 찍는 과정을 통해 시간이 공간화되는 과정을 경험한다.하나하나 점을 찍어 나가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어울림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지구에 남은 딸 머피의 시간과 우주여행을 떠난 아버지 쿠퍼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 딸이 아버지보다 먼저 늙어버린다는 설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대성이론이라는 물리학 이론을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얼마든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쉽게 공감한다. 양주혜는 바로 이러한 상대적인 시간, 그리고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경험한 시간을 이야기 한다.
책에서 시작된 양주혜의색점은 캔버스에 옮겨졌다가 타올, 방석, 이불, 침대보 같은 일상 용품에도 올려졌다. 문화관광부 청사, 아르코 미술관,광장과 같은 공공의 공간에서나아가 바닷가 백사장, 버스와 기차, 전철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일상과 시간의 지배를 받는 모든 공간은 그의시간과 캔버스로 직조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직물 위에 작업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천은직조의 특성에 따라 그 위에 칠해진 물감에조응하여 자연스러운 구김을 만들며 형태가 변한다.바탕 천 위에 올려진 점과 선은 직물의 성격과 형태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직물과 물감들이 만드는 구김은 색에 다양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마치 인드라Indra의 그물코와 구슬처럼 점과 선 면은 서로 조응한다. 바로 이러한 공감각적 경험이지극히 개인적인 작업행위에서 보편성과 공감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오래 곰삭아 세상에 나온작가의 시간이 담긴 화면은 마치 음악처럼 느껴진다. 보는 이의 심금에 따라 다른 울림을 낳으며, 만나는 시간에 따라 다른 조형으로 느껴진다. 목적지가 분명한 산문이 아니라 듣는 이마다 다른 길로 이끌리는 시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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