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아트월에서는 정물을 소재로 연출된 찰나의 장면을 시각화하는 5인의 전시를 개최한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정물화의 고전적인 개념을 새로운 방식으로 변용한다. 흔히 정물화를 이야기할 때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를 되짚어보게 된다. 경제, 문화 제반 분야에서 황금기를 맞이한 그 시기 신흥 부유층의 자본이 회화에 모여들면서 정물화가 풍미하였다. 한편 그 시대는 전쟁, 흑사병의 범람으로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는데, 이를 배경으로 교훈적 삶의 아이콘들이 정물화 소재로 등장한다.
바니타스Vanitas 미학은 정물화에서 ‘삶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죽음, 허무함을 의미하는 도상으로는 타버린 초, 해골, 시들어가는 꽃과 과일, 비어있는 와인잔 등이 대표적이다. 정현목은 이 고전적 도상을 차용하여 어두운 배경 속에 흰 천 위로 오브제들을 배치하여 세속적 욕망과 허망함을 표현한다. ‘찬란하지만 사라지고 마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구성연의 설탕으로 만든 오브제로 이어진다. 작가는 황학동 시장 등지에서 유럽 궁정문화 소품을 카피한 장식품들을 수집한다. 이국적인 느낌의 화병들은 일견 화려하지만 조야하다. 설탕으로 만들어져 황금색으로 녹다가 굳어버린, 그리고 다시 녹아 내리는 그 찰나가 작품들로 탄생한다.
‘사라지지만 찬란한 것’,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에 대한 은유는 누구든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시킨다. 김용훈은 오색찬란 시리즈에서 꽃의 화려한 순간을 전한다. 덧없는 아름다움이 간결하고 정제된 양식으로 표현되었다. 감미로운 색채로 카페 안 인물들의 자유로운 한때가 그림 속에 펼쳐진다. 서지선의 작품은 일견 르느와르Auguste Renoir 가 그린 보트의 만찬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 감미롭다. 그러나 그림 속 유리잔, 접시, 샴페인 병은 깨져 버릴 듯 자잘한 색면으로 표현되어, 현대인의 우울감에 주목한다. 이주은의 사물은 축적된 시간, 사사로운 기억의 상징물이다. 작가는 나무의 결에서 켜켜이 쌓인 시간들을 느끼거나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쿠키상자 속 물건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미장센’ 이라는 전시명처럼 작가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구성하듯 오브제들의 배치에 관한 총체적 계획을 세운다. 여기에는 존재와 부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깃들어있다. 정물화의 전통은 동시대 작가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영감을 불어 넣는다. 이 전통이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었는지, 스무고개 게임을 하듯 미술가의 정물들을 감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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