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는 회화만을 고집하며 묵묵히 화가의 길을 걸어온 이태호(1950~)를 초대해 《긴 여로의 우리는 하나의 과정이자 끝맺음일 뿐》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초기 대표작 10여 점을 비롯하여 최근작 20여 점 등 총 30여 점이 전시되며, 더불어 각 작품이 제작될 시기에 기술된 작가의 작업노트도 작품과 함께 연출되어 당시 작가가 어떤 태도로 작품에 임했는지 살펴볼 수 있게 구성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긴 여로의 우리는 하나의 과정이자 끝맺음일 뿐” 또한 작가가 최근에 작성한 작업노트에서 가져온 문구로, 정주하지 않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보여주며 더 나아가 작가가 최근에 이른 어떤 경지를 대변한다.
이태호는 억새와 바다를 먹으로 정교하게 그린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태호를 동양화가로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태호의 화업 인생을 살펴보면 그를 그렇게 부를 수는 없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회화작가라 일컫는 것이 옳다.
작가는 초기 캔버스와 유화물감을 들고, 무엇인가를 온전히 본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사물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 모두를 화면에 담고자 했다. 이후 그는 work-현대미술회, 포인트 현대미술회 등에서 활동하며 일명 ‘형상미술' 이라 불리는 장르를 이끌기도 했는데, 당시 작가는 한국의 맹목적인 서구지향의 근대화가 불러온 '소외’ 문제를 화면에 적극적으로 다뤘다. 이후 시끄러운 도심에서 벗어나 철마에 자리 잡은 작가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그는 철마에서 한동안 자연을 벗 삼아 구도자적인 자세로 명상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름다운 자연이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고는 다시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소나무-훼손을 위한 방어>(1995), <베어진 소나무>(1995)가 대표적이다. 당시는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 인간의 오만함이 낳은 산업재해가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이후 환경문제에 더욱 천착해 사람의 외관에 자연을 담은 작품 등을 제작하며 작가로서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작가가 본격적으로 먹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이르러서인데, 이후 대표작으로 알려진 <억새> 시리즈와 <물-결>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작가는 이 작품들을 제작하며 이전의 다소 직설적인 화법에서 벗어나 보다 높은 차원에서 우리 삶의 문제를 화면을 통해 구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화가란 본디 “작업실의 고요한 환경을 이겨내고 주어진 화면과 팽팽한 기싸움을 하는 자”임에 주목해 작품 하나하나를 제작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어느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계속 변화를 모색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이태호는 “삶은 여행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하나 완성된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지금은 “하나의 과정이자 끝맺음"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태호의 화업 인생 전반이 담긴 이번 전시를 감상하며 우리는 그 긴 여로의 어디에 서 있는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얻기를 바란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