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윈도 너머로 예사롭지 않은 자태의 도넛 탑에 이끌려 전시장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맛보는 황홀경에 휩싸여 미각과 시각의 혼돈에 빠져들게 된다. 곧 벽면의 곳곳을 메우고 있는 도넛들과 눈길을 주고받다 보면 구수한 빵 내음과 달콤한 시럽의 향이 코끝을 감돌 만도 한데, 비근을 이리저리 힘주어 보다가 감각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의구심에 고개를 삐딱하게 놓아 보기도 한다. 한 발짝을 더 디뎌보면 노릇하게 잘 부푼 빵의 표면을 걸쭉한 글레이즈가 윤기를 내며 뒤덮어 흘러내리는 순간과 마주할 수 있다. 반짝이는 각양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조각들은 하얗게 내려앉은 슈거 파우더와 알록달록한 스프링클이 되어 걸음과 시선이 이동하는 순간을 허락하지 않고 동공을 요동치게 만든다.
신세계 갤러리는 <도넛>을 통해 우리의 지각과 감정을 유쾌함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미적 경험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김재용 작가의 전시를 개최한다. 90년대 후반부터 해외를 무대로 다수의 전시를 꾸준하고 활발하게 이어온 작가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내의 개인전을 갖게 됐다. 이번 전시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설치된다. 전시의 제목 《SHOOT!》을 함축적으로 풀어낸 첫 번째 방에는 붉은 동심원의 과녁이 부착된 벽면을 향한 포구가 시선을 이끌며, 이내 사방이 폭죽의 향연에 놓이는 일루전의 유희를 품어 볼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공간에는 거대하게 두드러진 작품 속에서 작가의 이례적인 경험과 실험적인 의식에서 비롯하여 구현된 잠재적 인지의 함의 과정들을 정제하고 응축하여 펼쳐 보인다.
이번 전시가 팬데믹의 어려운 환경과 새로운 한 해를 여는 시점에서, 많은 분에게 긍정과 극복의 메시지가 되어 보다 나은 앞날의 준비와 계획에 의미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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