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푸른 생명들이 자아내는 정취와 바람결에 너울대는 흙과 나무의 향기가 싱그럽게 스며든다. 움츠렸던 겨울에서 벗어나 꽃망울이 툭툭 열리는 광경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자연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배우고, 광활하게 밀려오는 풍경 속에 누구나 시름은 잊고 저마다의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봄볕이 기웃대는 계절, 우리는 한결 따뜻해진 바람의 힘을 빌려 새로운 각오마저 떠올려본다.
19세기 보들레르는 플라뇌르(flâneur)라는 산책자의 개념을 꺼내며, 걷는 행위에서 얻는 기쁨과 유희에 주목했다. 이들은 여유롭고 느린 산책을 즐기며 곳곳에 산재된 찰나에 반응한다. 이를 통해 평범한 것에서 특별한 것을, 흔한 것에서 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길 기대하며 일상과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의 경험을 추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기 다른 산책자의 모습으로 주변의 풍경을 받아들이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김지수는 느리고도 섬세하게 자연 속의 향기를 수집하여 자연에 대한 정밀한 관찰을 시도한다. 작가에게 향기는 마음까지 닿아있는 영역이며, 삶 한 켠에 안온하게 정착하여 오래도록 기억을 환기시킨다. 이재욱은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색을 즐긴다. 미국 유타주의 협곡에서 펼쳐지는 영상은 자연을 매개로 한 예술가들의 창조 과정을 공감각적인 차원으로 접근한다. 이지연의 풍경 속에서는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눈이 부시게 만개한 꽃과 풀들이 힘껏 생명력을 뽐내고 봄을 향해 뻗어나간다.
송수민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가로지르는 풍경을 응시한다. 자연에 대한 심상과 일상의 순간들을 단단하게 응축시켜 새로이 풍경의 확장을 시도한다. 조재는 거대한 도시 풍경 속의 잔해를 무심한듯 감각적으로 포착해낸다. 떠들썩하다가도 재빨리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이 퇴적되어 선명한 색채로 구현된다. 현유정은 한 남자가 숲을 찾아 떠나면서 일상 속에 흩어졌던 호흡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많은 것들이 지겨워지고 시들해질 때, 계획 없이 훌쩍 떠난 산책길에서 인생의 진짜 묘미를 발견하듯이 자연 속으로 발을 내딛는 것도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산책에 나선 우리들은 저마다의 걸음걸이와 리듬을 유지하며 각자의 유토피아를 마주한다. 돌이켜보면 제한된 일상을 겪으며 그리웠던 순간은 아주 평범하고 익숙한 일상의 조각들이었다. 잊고 지냈던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것이 주는 한없이 너그러운 기쁨을 만끽하며 모두가 찬란한 봄을 맞이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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