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작가들이 선보이는 동시대 추상
추상미술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져왔다. 추상의 의미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추적한 마순자는 “추상의 개념을 단일하고 확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 넓은 의미에서 추상은 구상 또는 재현과 구별되는 개념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미술 자체의 개념도 미술 상황과 더불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추상을 단일한 의미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부터 무리”라고 말한다.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가 준비한 《abstract-ing》展은 이런 논의들 위에 추상이라는 조형언어가 동시대에 어떻게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미디어 아티스트부터 퍼포먼스 작가, 설치 작가, 정통 회화 작가들을 초대해 확인해보고자 하는 자리이다.
헤이그 왕립예술대학을 나온 빠키는 가수 이승환의 무대 영상을 제작하고, 세계적인 패션잡지인 하퍼스 바자의 표지를 디자인하는 등 비주얼 아티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 속에서 일정한 리듬을 발견해 그것을 기하학적인 요소로 변환시키는 추상 작업을 제작한다. 그동안 빠키는 이러한 세계를 보다 잘 보여줄 수 있는 키네틱 조각, 설치, 영상 등을 주로 발표해왔는데, 이번 전시에는 최근 제작하고 있는 기하학적 회화 시리즈를 선보인다.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 대형 전시에 참여하며 줄곧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온 강태훈은 조각, 설치, 영상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최근 경제학 저서에 나오는 수학적 기호들을 비롯하여 소용돌이 모양의 나선 등 추상적인 조형언어들을 작품에 활용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도 그 연장 선상에서 제작된 작품 <열람실 G7 L13>을 선보인다. 세계 최초로 개인 인공위성을 발사해 BBC(영국), France24(프랑스) 등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송호준은 최근 라디오스타(MBC), 요트 원정대(MBC) 등 예능에도 출연하며 방송인으로도 알려진 미디어 아티스트다. 그 역시 그간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이면을 고발해왔는데, 이번 전시에는 컴퓨터에서 저장 및 전달에 용이하고자 선택하는 ‘압축’이라는 행위를 추상과 연결한 신작을 선보인다. 이가영은 말레비치의 검은색 회화를 연상시키는 추상작업을 하다가 최근에는 주변의 일상을 리얼하게 화면에 담는 작업으로 전환해 작품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는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추상 회화들로 참여했다. 글래스고 예술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희준은 데뷔 이래 지속해서 추상을 탐구해온 작가이다. 작가는 “세상의 기술이 점점 빠르고 선명하게 발전하는 오늘날의 모습에서 추상은 반대로 적은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그것이 오늘날의 속도에는 필요한 요소”라 생각하며, 추상이 “과잉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말한다. 겸재 정선미술상, 에트로 미술상 등을 수상하며 차세대 회화 작가로 자리 잡은 전희경은 줄곧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풍경을 추상적인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을 제작해왔다. 그는 거침없는 붓질 위에 디테일한 리터치를 통해 회화의 여러 가능성을 실험해왔는데, 이번 전시에는 작은 점에서 비롯된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근작들을 선보인다. 뮌스터 아카데미(독일)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대구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지면서 이름을 알린 하지훈도 풍경을 추상적인 언어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작가이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풍경의 편린들을 조합해 하나의 ‘섬’이나 ‘광물’처럼 보여주곤 하는데, 이런 화법을 통해 “대상의 단편적인 사실이 아닌, 대상의 이면이나 기억과의 연관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처럼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추상을 자신의 조형언어로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하지만 그것이 표현된 방식과 그 의미는 모두 제각각이다. 추상은 기하학적 외형으로도 표현주의적 외형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누군가는 세계가 작동하고 돌아가는 원리를 정리하여 보여주기 위해 추상이란 조형언어를 선택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같은 추상을 사용하면서 세계를 지우고 그 너머를 보게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과잉 시대에 반하여 추상을 제작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추상이 주요 정보들을 지움으로써 정보의 독점을 낳는다고 고발한다. 모든 미술 작품은 사람들로 하여금 작품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풍경화이나 인물화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진 작품들도 그러하다. 하지만 일정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추상의 경우 자유로운 생각의 유희 폭이 더 넓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전시에 제시된 다양한 동시대 추상들을 감상하며, 추상이 던져주는 많은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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