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고요히 흐르는 물을 바라봅니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지만 마치 정지된 듯한 물의 이미지를 마주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생각에 잠깁니다. 시간, 날씨,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반짝이는 그 다양한 빛깔에, 그리고 공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그 미세한 물결의 매력에 빠집니다. 광주신세계갤러리에서는 광활한 바다와 흐르는 강물에 자신만의 서사와 감성을 담은 작가 다섯 명의 전시 <흐르는 시간, 그리고>展을 준비했습니다. 작품 속의 풍경을 바라보면 떠오르는 지난 추억이 있을까요? 아니면 그곳을 함께 찾아가고픈 사람이 있을까요?
창밖으로 푸르른 바다의 풍경이 보입니다. 나무와 자개로 표현된 이 따스한 광경은 김덕용 작가의 바다입니다. 오랜 시간을 견뎌내 온 나무의 결에 자개가 더해져 오묘한 색감을 발산합니다. 인고의 시간을 지내온 나무에서 그 깊이를, 그 위에서 시시각각 다른 색을 발하는 자개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내 온 지난 시간들이 어떠했는지 돌아보는 동시에 창 밖의 멋진 광경을 통해 내 앞에 펼쳐질 다가올 시간을 그려보게 됩니다.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펼쳐진 시간, 일몰 이후와 일출 직전의 남도의 바다를 사진으로 담는 박일구는 대기의 변조가 가장 심한 순간에 나타나는 형형색색의 자연의 색감을 마치 색면추상과 같이 사각프레임에 담습니다. 이것은 남쪽 바다의 기록인 동시에 바다의 빛깔과 물결이 선사하는 관조의 시간을 체험하게 합니다. 아무 소리 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풍경, 그 평온함 속에 인물은 등장하지 않지만 삶의 흔적과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김연수가 그리는 인적이 없는 풍경, 즉 바람이 만드는 경치는 지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기록입니다. 바람에 따라 움직이고, 주변환경과 어우러져 흐르는 물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멈춰 그곳의 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캔버스 안에 담긴 것은 작가가 바라 본 단순한 자연의 시각적 이미지가 아닌 시시각각 변하는 그곳의 감정과 자연과의 교감인 것입니다. 조각조각의 한지에 프린트 된 사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민준기의 푸른 풍경은 어디서나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빛이 비치는 물결의 이미지이지만 한 장, 한 장이 찢어져 붙여진 종이 틈 사이에 작가만의 추억이 서려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발 담그고 놀던 하천의 차가운 물결과 그 위에 비치는 물빛, 피부에 스치는 수풀과 바닥에서 느껴지는 조약돌이 각각의 캔버스에 그려진 허연화의 ‘달천천’ 연작은 하천에서 느껴지는 감각 하나, 하나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물과 연관된 풍경을 그리고 만들어 현대사회에서 숱하게 반복적으로 느끼게 되는 익숙한 공감각을 넘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특정 장소에서 남겨진 기억은 그 장소를 찾았을 때 다시 떠오르고는 합니다. 그 공간이 가져다 주는 기억은 변함없이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있지만 사실 다시 찾은 그곳은 부지불식간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요히 흐르는 물처럼 우리의 시간 역시 계속해서 흘러 현재에 다다랐고, 우리의 주변도 알게 모르게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물은 다양한 색감과 감정들로 표현되었고, 작가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금의 나는 어떤 색을 비추며 반짝이고 있고, 앞으로는 어떠한 빛을 발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마치 우리가 실제 자연을 마주한 것과 같이 전시 작품 앞에 서서 작가가 전달하는 감정과 교감할 수 있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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