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와 같은 전시공간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보통 시각예술 카테고리 안에서 회자됩니다. 회화와 조각, 사진, 그리고 미디어아트까지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형식의 시각예술 분야가 존재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이 작품들을 감상하며 사용하게 되는 감각이 시각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일까요? 눈 앞에 놓인 작품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감각들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을 넘어 무의식 속에 있는 다른 감각들도 일깨워줍니다. 시각을 중심으로 하여 청각, 촉각, 그리고 후각까지 다양한 감각들이 작품 앞에서 반응하고, 전시 동선을 따라 이동하는 순간에도 여러 감각들은 계속해서 감동과 여운을 지속시켜줍니다. 이번 <감각하는 자연> 전시에서는 자연에서 채득한 이미지와 소리, 그리고 그곳에서 채취한 물질과 향기를 순차적으로 감상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작품 앞에서 반응하고 있는 우리의 다양한 감각들을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시원하게 낙하하는 물줄기의 사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권부문의 사진은 정해진 형태가 없는 물의 흐름을 포착하여 그 흐름의 형상을 표현하였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한 흑백의 <SKOGAR> 연작과 특정 지역의 장소성은 삭제되었지만 그 현장의 감각을 푸른색으로 표현한 <WATERFALL> 역시 시시각각 다른 모습의 폭포를 담고 있습니다. 수직으로 일정하게 떨어지는 물의 흐름이 수평의 수면을 만났을 때의 역동성과 반복적인 움직임에서 나오는 미세한 차이를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보여줍니다.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정면으로 가만히 그 찰나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으면 물줄기에서 발산되는 거대한 에너지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통해 느껴지는 자연의 생명력을 감각할 수 있습니다. 그 옆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련한 물소리를 따라 전시장의 더 깊숙한 곳으로 발을 들이면 최종운의 <수직의 바다>와 마주서게 됩니다. 작품 앞에 다가서면 서서히 일렁이는 파도의 물결은 그 소리와 함께 수평이 아닌 수직의 장벽으로 표현되어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의 미미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시장 한 켠에는 전국 곳곳의 바다에서 채집한 소금이 놓여져 있습니다. 최선의 <소금은 말한다> 연작은 바다 속 소금을 통해 그 곳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전합니다. 소금을 흔들어 떨어트리고, 만지고 감각하며, 떨어진 소금이 관람객의 신체 어딘가 묻어 전시장 밖 어딘가로 옮겨져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와 기억이 함께 전달되어 지속되기를 바래봅니다. 전시장을 나서며 들어갈 수 있는 윈도우갤러리에는 김지수의 <식물과의 대화>가 기다립니다. 수생식물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면 환하게 발하는 빛과 함께 엽록체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공간 안에 퍼지는 식물의 향기는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식물의 존재를 확실하게 부각시켜주며, 한 생태계 안에서 공존하는 생명체들의 소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소통을 통한 생존의 모습은 마지막 최선의 <부작함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염부들이 사용했던 이불 위에 그려진 이 연작은 생명이 꽃피울 수 없을 것만 같은 염전에서 자란 함초의 신비로운 붉은 색감으로 그려졌습니다. 염전에서 부작(不作)을 실천하는 사람의 노트에 그려진 난초에서 영감을 받은 이 그림은 극한의 환경에서 자라난 한 생명의 의지를 나타내는 동시에 과연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에 대해 사유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마스크를 착용해 왔습니다. 그로 인한 답답함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자 인적이 드문 자연의 품을 찾아 떠나보기도 했습니다. 자연 안에서 우리는 편하게 숨 쉬고, 공기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며, 자연의 소리를 듣고 그 경이로움에 한없이 감탄하며 도심 속 생활로 인해 잠들어있던 여러 감각을 다시 일깨워 왔는지도 모릅니다. 예술 감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눈으로 보는 동시에 다른 감각들까지 작품 감상에 끌어들이는 이번 전시는 우리를 또 다른 감각의 세계로 안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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