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신세계미술제는 지역의 젊은 작가들을 발굴·지원하여 지역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1996년부터 개최해 온 공모전입니다. 미술제 수상작가들에게는 개인전의 기회를 통해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세계를 미술계에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2018년 제19회 광주신세계미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정기 작가의 초대 개인전입니다.
이정기 작가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좋든 싫든 우리의 모든 것이 미래에 유산으로 남게 됨을 인식하고 있다.”는 주제를 바탕으로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이용한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미래의 시점으로 살펴본다는 ‘미래적 현재시점’은 다채롭게 펼쳐지는 작품세계를 관통하며 작가만의 독창적인 미학을 이룹니다. 이정기 작가가 다루는 주제의식은 동시대의 다양한 사회, 문화 현상과 그러한 현상의 역사적 원인과 결과를 살펴보는 거대한 영역에 걸쳐있습니다. 하지만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작가의 가족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까운 존재들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식민지배와 세계대전, 한국전쟁, 절대적 빈곤,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거친 세대의 대변자인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 이후 세대인 작가, 작가의 아이들까지 가족관계 안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연관관계를 살펴봅니다. 이는 사회적 역사와 개인적인 가족의 서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관람객들에게도 크고 작은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가족의 모습이 마치 미래의 시점에 발견된 조각상이나 금화처럼 유물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번 《미필적 고의》전은 이러한 ‘미래적 현재시점’의 연장선에서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 변화를 넘어 위기로 다가온 지구온난화, 신냉전 구도 아래에서 이뤄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작가가 느꼈던 혼란과 불안을 담았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를 대표하는 〈유물〉 연작과 예기치 않은 죽음과 이별에 대한 소회를 담은 〈부재〉 연작,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표상적으로 담아낸 〈위기의 가능성〉을 선보이며, 인간의 실존과 연관되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회적 책임을 들추어 보고자 합니다.
지난 미술제 심사평에서 이정기 작가의 작업은 “유물로서의 가족을 리얼하게 선보였다. 조각적 설치를 주로 하던 그가 시도한 평면은 깊이와 현장감이 충만하다. (...) 오래 공들인 어머니 대리석 조각상이 평면에서 드러나는 과정은 실체로서의 어머니와 정서적, 의식적 기억의 어머니가 돋을 새겨진 듯하다. 깊은 주름과 구릿빛으로 그을린 아버지의 초상은 사실적 재현의 극적 순간을 표출한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상 수상 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번 이정기 작가의 《미필적 고의》 전시를 통해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활동을 미래의 시점에서 되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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