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는 그의 저서 『최상의 공화국과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1516)를 통해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를 처음 선보였다. 이는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어 ‘topos’에 ‘u’를 붙인 것으로, 여기서 ‘u’는 ‘좋은’이란 뜻의 접두어 ‘eu’와 ‘없음’이란 부정의 뜻을 가진 접두어 ‘ou’, 둘다를 의미했다. 즉 토마스 모어는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세계’를 말하기 위해 유토피아란단어를 고안해낸 것이다. 이후 유토피아는 이상세계 또는 이상국가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몽상의 세계’, ‘망상의 세계’와 같이 불가능하고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세계라는의미를 함께 내포하게 되었다. 전시 ‘(in)active UTOPIA’는 유토피아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를지우고 긍정적인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기획되었다.
전시 제목인 ‘active utopia’는 올해 초에 타계한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바우만의 저서 『생동하는 유토피아』(1976)에서 가져왔다. 그는 이 책에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토피아란 단어는 어떤 이상적인 아이디어나 계획, 또는 전망 등이 현실성 없을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그것이 비과학적이고 절제되지 않은 공상의 산물이어서 현실과 조화를 이룰 수 없으니 기각해야 한다는 함의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것들이 결국 우리의 현실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헤게모니로 작동하고 있다는점을 지적하고는, 그렇기에 이를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결국 책 제목에 쓴 그대로 유토피아는 단지 망상이나 몽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생동하는(active)’ 그리고 충분히 ‘가능한(possible)’ 과학적인 세계이고 이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부터 시작됨을 책을 통해 말한다.
전시에는 사진, 영상, 설치는 물론 건축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작가들은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사회를 직·간접적으로 묘사하거나 또는 구성주의에 대한 스터디의 결과물을 전시한다. <이우환 공간>을 비롯하여 부산의 주요 건축물의 디자인을 하고 설계한 가가건축의 안용대는 구성주의 대표작가 타틀린의<제3 인터네셔널 기념비>(1916)를 그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타틀린의 기념비가 나선형의 철골 구조였다면, 안용대가 출품한 기념비는 사각형태의 빛으로 된 구조물이다. 부산에 살며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 전시에 참여하고 독일화랑과 전속을 맺기도 한 강태훈도 기념비를 제작했다. 하지만 그의 기념비는 옆으로 누워져 마치 확성기와 같은 형태 또한 취하고 있어 여러 의미를 상기시킨다. 부산의 유망작가로 떠오르고 있는 송기철은 기표에 기의를 신경질적으로 고정시키는 것을 보여주는 설치작품으로 유토피아의 불가능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엿보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개인이 홀로 인공위성을 쏜것으로 이슈가 된 송호준은 그의 대표작인 <OSSI>와 <압축하지마>라는 영상작품으로 이 전시에 참여한다. 이 작품들은 동시대 기득권의 지식 및 정보 독점화와 사유화 그리고 공유화의 문제를 다루고있다. 중앙미술대전 대상, 송은미술대전 우수상 등 큰 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이광기는 역사적 사건을 아침 드라마처럼 편집한 영상설치작품과 작은 리어스크린에 컴팩트한 영상을 상영하는 설치 작품으로유토피아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일찍이 독일유학을 마치고 유럽에서 활동하다 최근에는 호주, 홍콩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이상현은 이상세계를 위해 꼭 살펴봐야 하는 여러 핵심적인 문제들인 근대, 기득권, 생산수단, 자본 등의 문제를 낱낱이 파고든 다큐멘터리 작품과 안견의<몽유도원도>와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을 배경으로 한 영상작품으로 이 전시에 참여한다.역시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부산을 기점으로 작업을 하며 부산비엔날레 등 여러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조형섭은 유학시절 독일에서 본 파라다이스역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근대가 꿈꾼 이상사회의 모습과그 이면을 그리고 더 나아가 잡을 수 없는 유토피아의 원리를 영상설치 작품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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