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인 14세기 후반에 기원을 둔 ‘분청(粉靑)’은 조선 전기 약 200년 동안 조선 도자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새로운 미학을 보여준 도자양식입니다. 화려한 고려 청자나 격조 높은 조선후기 백자와 달리 자유분방하고 실용적인 형태, 폭넓은 장식기법, 대담한 무늬로 이루어낸 아름다움이 특징입니다. 생동감 있게 당대의 정서를 표현하여 한국 도자의 뛰어난 한 측면을 대표하는 예술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세종연간(1418-1450년) 양과 질(質), 모양, 장식, 무늬 등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전국에서 여러 가지 기법으로 제작되다가 16세기 백자의 등장과 함께 도자사의 주류에서 사라졌습니다.
조선 분청은 근대시대의 새로운 시각을 계기로 그 가치와 우수성이 재발견되었습니다. 소박하고 친근한 모습이 한국미의 원형을 품고 있다고 평가되었습니다. 마치 현대 예술의 정신을 선취한 듯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본성은 근대적 예술의 흐름에 부응하였습니다. 분청 특유의 동시대성은 현대 한국도예 역사에서 그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이번 BUNCHONG展은 지난 1월 가나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이제 모두 얼음이네: 급월당 줄기 현대 한국 분청전을 바탕으로 분청의 현대적 가치에 집중해 보고자 마련된 것입니다. 한국 현대 분청의 대가 윤광조(尹光照), 그와 사제간의 인연을 이어 온 작가 4인을 초대한 이 전시는 현대 분청의 색다른 아름다움과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줄 것입니다.
분청의 예술성을 국내외로 알려온 선각자 윤광조, 꾸밈없는 순박함이 담긴 회화적 섬세함과 당당한 입체감이 오묘히 교차하는 변승훈(邊承勳), 분청 기형의 전형성을 살짝 흔들어 허허실실 자유로운 회화적 표현과 결합시키는 김상기(金相基), 기물 형태의 유형적 요소를 깊이 허물고 쓰임보다 내면의 순수함과 소박하고 구수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김문호(金汶澔), 그릇의 정형성을 지키되 표면에서 재료가 빚어내는 우연적 요소와 절제된 찰나의 스침으로 이루어지는 회화적 교감을 표현에 집중한 이형석(李炯錫)이 전통과 현대성이라는 끊임없는 물음 속에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업을 선보입니다. 급월당 일문(一門)에서 일어서 각기 일가를 이루었으며 기존의 장르적 경계를 끊임없이 허물고 한계를 실험하되 분청의 본성에서 일어나는 각자의 화두에 집중해온 작가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이 전시는 가나문화재단의 전적인 협조로 이루어졌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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