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갤러리는 10월 7일부터 11월 14일까지 손몽주와 애나한 작가의 2인전 ‘Two Worlds: 두 개의 세계’전을 개최한다. ‘두 개의 세계’란 표면적으로는 두 작가의 만남을 시사하며, 두 명의 작가가 다루는 각각의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에서는 세계를 통해 다시 새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인간의 태도와 사유에 주목하며, 진짜와 가짜, 실재와 환상, 과거와 현재, 또는 현재와 미래 등 양분된 세계를 넘나들며 존재하는 경험의 양면성과 가변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손몽주는 합성 고무밴드를 사용하여 복합적이고 기하학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무(無)의 공간에서 신체만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띠를 연결하는 행위는 시간을 직조하는 과정이자 자신을 둘러싼 실재와 마주하는 ‘공간의 실천’으로 작동한다. 최근에 개최되었던 《Swinging Buoy》(카린갤러리, 2021.9.17-10.3)에서는 부표를 형상화한 거대한 오브제와 그네를 설치하여 불가항력적 자연에 몸을 맡기고 순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다. 고무밴드와 그네 작업은 어떤 경우에는 서로 대립되기도 하지만 역으로 작가가 마주한 두 개의 세계를 연결하는 단서로 읽히기도 한다. ‘둥둥 떠 있는 표류로 향한 길은 결국 의지와 힘을 뺀 채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 몸을 그저 맡겨버리는 타협 아닌 타협으로 반복적인 당김과 밀림의 연속 속에 부유된다’ 라는 작가의 말처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때로는 감각의 주체로 장력의 공간을 넘나들며 보이지 않는 힘과 심리적인 장벽을 무화시키고자 한다. 작가는 새로운 공간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자신을 내맡기는 수용자로서, 자연 대상이나 인공적으로 형성된 장력 안에서 현상적 존재 자체에 대항하는 행위자로서의 양가적 경계를 넘나든다. 나아가 이 광경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공간 속에 개입하여 부유하는 거대한 장력과 기꺼이 마주하기를 제안한다.
애나한은 색, 선, 면 등의 복합적인 조형 언어로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 대해 공감각적인 심상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Le Petit Prince)’에서 받은 영감을 작업의 모티프로 사용하여 기억과 경험에 대한 사유를 펼치며, 현재와 과거 사이를 잇는 통로를 설계한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프루스트의 소설 중 한 구절에서 암시하듯이, 기억이란 사적인 영역의 서사로 존재하다가 특정한 물성을 매개로 촉발되어 시간의 균열과 공간의 틈새를 비집고 나아간다. 애나한은 그 균열 속에서 단순히 기억의 파편들을 소환하여 경험을 복기하고 행복한 과거를 음미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 어떤 사건도 정확하게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 것처럼 자연의 비가역적인 흐름 안에서 모든 사건은 유일무이하며 새로운 형태로 생성되고 재현된다. 작가는 우연의 역치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각을 획득하고, 그 다음 단계로서 공감각적인 레이어의 작동 가능성을 시험하여 삶과 예술을 넘나들며 존재하기를 꿈꾼다. 시간과 빛이 축적된 오브제, 어스름이 깔린 가운데 온기를 뿜어내는 조명, 일정하고도 균일한 호흡으로 배열된 페인팅 등 작업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이 기억의 촉매가 되고, 구체화된 감각으로 구현될 때 경험의 지평은 무한히 확장된다. 작가는 삭막하게 흘러가는 현실에 멈추어 서서 과거와 현재, 실재와 가상 세계를 연결하는 경계의 이면을 그리며 공감각적 경험을 극대화한다.
그들이 마주한 세계는 밀물과 썰물에 내던져진 신체 그 자체, 혹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가 희미해지는 기억처럼 결국 흘러가는 것에 대한 자각으로 더욱 선명해지며, 이를 통해 발견한 경계 안에서 경험의 본질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두 개의 세계가 이루는 경계 위를 넘나들며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무수한 관념들 사이에서 인간은 가장 근원적이며 선명한 경험을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가. 아무리 사진을 남기고 언어로 치환하려 노력해도 완벽하게 기록되지 않는 순간을 우리는 대체 무슨 수로 영원한 시간 속에 가두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쉬지 않고 감각의 층위를 뒤집고, 미지의 공간과 시간에 몸을 기대어 대화를 시도한다. 무한히 확장된 경험의 범주 안에서 언젠가는 진실된 경험에 가까스로 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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